데모도 ep44
"형님 괜찮으세요?"
"어 어서 먼저 박아 내가 받치고 있을게"
택건과 가인은 천장에 보드를 치는 공사를 위해 A자 사다리에 가운데에 올라서서 보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1200mm*600mm짜리 지프록(Gyprock: 석고보드) 보드를 양쪽에서 받쳐 들고 밑에서 쏘아 올린 레이저 선에 맞춰 천장에 매달려 있는 스틸 프레임에 스크루로 체결하는 작업이었다. 둘이서 호흡을 맞춰 천장 보드를 하나씩 인스톨(설치) 해 나가고 있었다.
"너 거시기는 괜찮냐? 큭큭"
"예?! 갑자기 무슨 얘깁니까?”
“거시기 안 아프냐고?”
“형님이 그걸 어떻게?"
"내가 하나님이다 이 자쉭아 큭큭큭"
"아놔 ~ 안나… 뭐 좋은 경험 했죠, 뭐 하하 여자 의사가 어찌나 자세히 내 고걸 이리저리 살펴보는지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푸하하”
“안 섰냐? 큭큭”
“너무 아파서 서진 않던데요 캬캬캬”
가인과 택건은 온몸에 가해지는 보드의 무게의 통증을 웃음으로나마 잠시 잊어본다.
“근데 무겁지 않으세요?"
"야~ 이 정도는 껌이지, 나 처음에 뭣도 모르고 중국애들 화이어첵(내연성) 지프록 공사하는데 갔던 때 기억하면 이 정도는 뭐 천국이지"
택건은 호주에 오고 수호와도 연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당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하루는 호주의 중국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찾아서 지프록 보드를 인스톨하는 공사장을 찾아갔다. 수호가 중국 회사에서 지프록 관련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나중에 같이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중국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생각에 스스로 찾아간 현장이었다.
"你是哪里人啊?”(당신은 어디 사람이오?)
“我是韩国人”(한국인입니다)
“哎呀,我在现场从来都没见过韩国人, 你能干这事儿吗?"(아이고, 내가 현장에서 한국 사람을 다 보네, 당신 이 일 할 수 있겠어?)
"没问题男子汉嘛”(문제없어요, 남자 아닙니까? 하하)
그때 찾아간 공사현장은 한 백 평쯤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지하 창고 건물이었다. 아직 새벽의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공사 현장에 시커먼 중국 인부들이 모여 있었다. 젊은 사장 한 명을 빼고는 다들 중국의 보통화(표준어)가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중국 사투리를 쓰는 통에 전혀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젊은 중국인 사장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택건에게 이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택건은 호기 좋게 대답했지만 중국 사장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창고 천장에 파이어 첵(Frie check gyprock : 화재 방지용 내연성 보드) 보드는 치는 작업이었다. 3000mm*1200mm짜리 그것도 16mm 두께의 거대한 보드를 천장에 인스톨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무게 또한 상당했다. 바퀴가 달린 움직이는 스케폴딩 위에 3명이 올라서서 밑에서 인부들이 쉬지 않고 올려주는 보드를 받아 올려 팔과 머리로 보드를 받치고 자동 스크루 건(Collated screw gun)으로 쉴 새 없이 스크루를 박아야 했다. 머리와 한쪽 팔은 보드를 받치고 한쪽 손은 건으로 스크루를 박으며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머리와 팔을 타고 내려오는 엄청난 하중 때문에 다리까지 후덜 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일을 치고 나갔다. 중국사람들의 저력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만리장성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상상이 되었다. 호주에서도 건설 쪽에서 중국인들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인해전술과 속도 전으로 타민족들은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파워가 있었다. 그들은 떼로 몰려들어 뭐든지 후다닥 해치우고 떠나간다. 건설현장은 공기 (工期) 단축이 관건이다. 특히 호주같이 인건비가 센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다른 민족은 2~3일 걸리는 일도 하루 만에 해치워 버린다. 문제는 빠르긴 한데 퀄리티가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고급 하우스보다는 커머셜(상업지구) 공사 같이 규모가 큰 공사를 위주로 그 세력이 커져갔다.
택건은 그날 마치 6.25 전쟁에서 떼로 밀려오는 중공군 틈에 끼어 휩쓸려 다닌 듯한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시공업체는 원청회사의 3차쯤 되는 하청업체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시간과 인건비와의 싸움이다. 내려가면 갈수록 열악하고 치열해지는 건 어딜 가나 똑같다. 택건이 찾아간 업체는 불법체류 중인 중국 인부들을 싸게 고용해서 공사를 하는 곳이었다. 택건도 그날 하루 종일 땀으로 흠뻑 젖은 옷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손에는 150불이 쥐어있었다. 그중 50불은 약국에서 파스와 진통제를 사는데 써야 했고 이틀을 침대에 드러누워있어야 했다.
시드니를 비롯한 대도시들 곳곳이 그렇게 중국인의 인해전술로 건설되었고 중국인은 호주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고생들 많으세요!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벌써 점심때네, 어이! 다들 내려와~ 밥들 먹고 하지"
오전이 끝나갈 즈음 인테리어 공사장 내부로 웬 여자가 두 손에 봉지를 가득 들고 들어온다. 그녀는 자신이 이 샵 주인이며 일하느라 고생한다면서 직접 점심을 싸들고 왔다. 그녀는 시드니에서만 자신이 창업한 프랜차이즈 스시샵을 세 군데나 운영하고 있는 한인 사장이었다.
이번에 또다시 시드니 외곽에 초밥 체인점을 오픈하려 준비 중이었다. 그녀는 택건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에 일찌감치 시드니에서 요식업으로 성공해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이룬 여자였다. 택건과 가인은 하던 천장 보드 작업을 멈추고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모두들 저희 샵 공사 잘 좀 부탁드릴게요"
"첫 번째 스시샵도 내가 인테리어 해줬잖아, 기억하지?"
"그럼요 기억하죠. 찰스 어르신, 그래서 제가 전사장한테 특별히 어르신한테 가게 공사를 부탁해 달라고 했거든요"
"허어 그래? 내가 또 이쪽 분야에선 알아주니까 하하"
"여기 음료수 좀 드시고 이번에도 잘 좀 부탁드릴게요"
"염려 붙들어 매! 내가 책임지고 예술로 다가 맹그러 놓을 테니까"
여자 사장은 찰스에게 음료수를 따서 건네며 어르신의 기분을 잘 맞춰줬다. 여사장은 사람 다루는 모습에서 장사 수완이 다분히 엿보였다. 요식업으로 성공한 데는 분명 사람 다루는 기술이 한 몫했을 것이다. 택건과 가인은 덕분에 그녀가 가져온 갖가지 스시 도시락으로 럭셔리하고 푸짐한 점심식사를 즐겼다. 보통 낮에 일을 하면서 점심은 간단히 때우기 마련인데 둘은 노가다를 하면서 이런 진수성찬을 처음이었다.
"오늘부터 공사 끝날 때까지 점심식사랑 음료는 제가 대접할 테니까 공사만 제때 잘 마무리 좀 부탁드릴게요 "
택건과 가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호주에서 노가다를 하며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여기 문화상 각자의 도시락이나 점심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밖에서 점심 한 끼만 사 먹어도 보통 15~20불을 써야 하는데 공사기간 동안 도시락 걱정도 덜고 돈도 세이브하는 일석이조의 행운을 얻었다.
행운이 있으면 불운도 따르기 마련이다. 오후에 인테리어 자재가 현장에 도착했다. 주방과 카운터를 공간을 분리할 석고 블록이 도착했다. 택건과 가인은 샵 밖으로 나가 자재를 확인하고 혀를 내둘렀다.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었다. 3m는 되어 보이는 길이에 너비도 600mm 두께도 100mm쯤 되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걸 사람이 직접 날라야 돼?"
택건과 가인은 둘이서 오후 내내 그 큰 석고 블록 벽들을 샵 안으로 나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데모도를 두 명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노가다 바닥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잘 먹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건축 현장에서 일정 중량 이상의 자재들은 장비를 이용해 적재나 하역 작업을 해야 하는 규정이 존재하지만 이런 소규모의 인테리어 공사는 사실상 비용상의 문제로 그런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건축업자들도 돈을 남기려면 되도록 큰 자재를 써서 작업 시간과 자재 비용을 절약해야 된다. 사이즈가 작은 것들로 쓰면 비용도 비쌀뿐더러 여러 번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맨 아워(Man-hour, 공임)도 더 들어간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소규모로 하는 공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규모 공사는 자재를 대량 발주하기에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소규모는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더 쥐어짜야 했다.
결국 사람에게서 그 비용을 뽑아내야만 했다. 호주의 건축 규정이나 노동법을 알리 없는 수많은 워킹이나 학생들이 데모도로 건축현장에서 노동시간이나 강도 대비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해 주기에 현지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잠시 왔다가 떠나갈 그들의 장기적인 근골격계 건강까지 고려해 줄 필요는 없다. 그곳의 현지인끼리는 그게 쉽지 않다. 서로 너무 많이 알아서 불편하다. 어찌 보면 인간은 다른 인간의 무지를 먹고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사장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워킹과 유학생들 SNS 커뮤니티에는 그런 악덕 한인 사장들을 고발하는 글과 사진들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곤 했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정보의 오픈과 공유가 활발해지니 그런 늙은 악덕 사장들은 자신은 왜 구인이 갈수록 힘든지 그 이유도 모른 체 세상 탓과 사람 탓을 한다.
"야! 오늘은 여기서 시마이하자. 내일은 하루 종일 이 벽을 다 세워야니까 아침들 든든히 먹고 와 알겠지? 힘 좀 써야 꺼야."
가인과 택건은 작업복이 땀으로 흠뻑 다 젖었다. 내일 또다시 이 벽들을 세워서 인스톨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칫 벽이 넘어져 밑에 깔리기라도 하는 날엔 오징어가 되어 이 세상과 작별할 수도 있었다. 자재의 무게로 봤을 때 최소 4명은 있어야 했지만 3명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기술자인 찰스는 힘을 쓰는 일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며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택건과 가인은 내일도 이 위험한 작업을 둘이서 해야 할 생각에 똥 씹은 표정으로 장비와 현장을 정리했다.
"아놔, 가인아! 이거 이러다 약값이 더 나오는 거 아냐?"
"하아~ 그러게요 형님 내일은 V(에너지 드링크) 대자로 한 사발 먹고 시작해야겠어요"
"그러게 이제는 안 먹곤 버틸 수가 없네"
가인과 택건은 장비들을 팩업(Pack-up: 작업 종료 정리)하면서 구시렁거렸다. 현장을 다 정리하고 택건은 찰스 어르신의 차에 올랐다. 찰스 목수와 택건은 집이 같은 방향이라 택건은 매일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출퇴근을 했다. 택건은 출퇴근 시간 차 안에서 오고 가며 찰스의 호주 이민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찰스는 호주에서 40년을 살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철광석 인부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스무 살에 아무것도 모른 체 넘어온 호주였다. 호주의 서쪽 끝 퍼스(Perth)에서 광부로 5년간 일을 하다 돈을 좀 벌어서 시드니로 넘어왔다. 시드니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건축현장 데모도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우리 딸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데, 한 녀석은 조만간 한국에서 판사 될 녀석이고 한 녀석은 독일에서 음악하고 있지 걔가 피아노를 어찌나 잘 치는지, 학교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니까"
찰스는 출퇴근길 차 안에서 틈만 나면 택건에게 딸 자랑을 하곤 했다. 그는 호주에서 혼자 살아가는 기러기 아버지였다. 첫째 딸은 한국에서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고 둘째는 음악 공부를 위해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첫째를 케어하기 위해 한국에서 같이 지내고 있었다. 한 가족이 세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이산가족이었다. 그는 호주에서 목수 기술자로 일하며 홀로 작은 하우스를 렌트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번 돈은 모두 두 딸의 학비와 생활비로 독일과 한국으로 나눠져서 보내졌다. 처음엔 한국에서 같이 살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곳처럼 그의 나이에 호주에서 받는 고임금을 받기도 힘들고 이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자신을 그 돈 주고 써줄 곳이 없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늙어서 사람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느니 차라리 이곳에 남아 자녀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야만 했다. 그 존재감이란 자녀와 아내에게 보내는 돈이었다. 처음 가족과 헤어지고 나서는 1년에 한 번씩은 한국이든 호주든 한 곳에 모여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지만 세월이 좀 흐르고 나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가족이 다 모이려면 적지 않은 돈이 깨지고 또 서로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로 명절에도 서로 화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렇게 가족들을 안 본 지 5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애들 다 크고 시집가면 그땐 나도 한국 들어가야지"
찰스는 언제일지도 모를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호주 TV를 보며 혼자서 저녁 끼니를 때우고는 적막 속에서 잠이 들었다.
택건은 찰스 목수를 바라보며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헷갈렸다. 가족(家族)은 집 가(家)에 무리 족(族)이 합쳐진 것이다. 한 집에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의미이다. 택건도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이곳에는 같이 살지 않는 가족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