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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상징 경량 로드스터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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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자동차 하면 천정이 있고 안에 사람이 타는 형태가 보편적이지만 태초의 자동차는 천정도 문도 없었다. 심지어는 브레이크도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가 보디 형태로 구분되기 시작한 시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데 그래서 옛날 차들을 구경하다 보면 신기한 부분이 많다. 그런 와중에 젊은이들과 ‘멋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보디 형태는 여전히 태초 자동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경량 로드스터이다.


로드스터는 사전적인 의미로 지붕이(천정) 없는 2인승 자동차를 뜻한다. 실내 공간과 디자인, 패키징 따위는 신경 안 쓰던 시절의 얘기 같을지 몰라도 로드스터는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이례 꾸준하게 사랑을 받았다. 로드스터 중에서도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대량 생산에 적합한 세부 보디 형태가 있는데 보통 직렬 4 기통 엔진을 장착한 경량 로드스터이다. 초기 로드스터는 말 그대로 2명이 탈 수 있는 지붕이 없는 차였다. 그러나 시대를 거듭하면서 소프트톱(천이나 가죽 재질의 임시 지붕)이 추가되기도 했고, 스포츠성향이 강조된 고급 모델도 등장했다. 가격도 비싸고 제조 공정도 복잡해 많은 메이커들이 로드스터의 생산을 망설였지만 일부는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태초에 자동차가 지닌 ‘운전의 즐거움’까지 더하고 대량 생산에 적합한 대중성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훌륭한 경량 로드스터가 된다.


경량 로드스터의 시작은 사실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우나 보통은 로터스의 엘란이나(1962년) 피아트 124 스파이더(1966년),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1965년) 같은 차들에 기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가장 원초적인 특징을 가졌지만 자동차의 한 장르로 정립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의외로 긴 편이다. 사실 로드스터는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장르이다. 그러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보다 작은 엔진에 가벼운 자체를 올린 경량 로드스터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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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로드스터로 가장 유명한 모델은 위에서 언급한 로터스 엘란이다. ‘차제 경량화가 가장 큰 무기’라고 여겼던 콜린 채프만이 고안한 엘란은 지금도 경량 로드스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모델이다. 백본프레임에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한 엘란은 그야말로 운전에 필요한 것들 외에는 생략된 부분이 많았는데 이런 요소는 현재까지도 경량 로드스터의 명맥을 잇는 모델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운전하는 즐거움이다. 출력이 낮더라도 차체의 민첩한 움직임, 시원한 가속력, 천정이 완전히 열린 구조에서 오는 개방감까지 더하면 경량 로드스터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로터스 엘란은 크게 성공한 모델은 아니다. 반면 엘란을 벤치마킹하고 단점들을 보완한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량 로드스터는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 모델로 혹은 멋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차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 왔다. 한국의 기아 역시 로터스 엘란(M100)을 1996년에 들여와 조립, 판매했으나 당시에는 ‘그저 비싼 스포츠카’ 정도로만 치부되다 2010년에 들어오면서 엘란이 가진 원래 목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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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로드스터는 영국이 가장 유명하다. 로터스 엘란을 비롯해 MG의 MGA, MGB, 미젯, 바이크로 유명한 트라이엄프의 TR 시리즈와 스핏파이어, 1950년대부터 스포츠카를 생산한 오스틴 힐리의 스프라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차종은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과 쉬운 유지 보수 등을 내세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일부 모델은 초기 설계를 바탕으로 1980년대까지 생산되거나 후속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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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는 알파 로메오와 피아트가 경량 로드스터인 줄리에타 스파이더, 124 스파이더 등을 내놓으며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알파 로메오와 피아트 역시 스파이더를 내세워 멋스러운 경량 로드스터의 명맥을 지금까지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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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위시한 유럽 출신의 정통 로드스터들이 나름이 입지를 만들고 있는 동안 일본의 마쓰다도 1989년 경량 로드스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유럽산 로드스터의 장점에 일본 자동차의 장점을 꼼꼼하게 집어넣은 마쓰다 로드스터(MX-5)의 출발은 굉장히 단순했다. 당시 마쓰다에 재직 중이던 직원들이 미국 연수 도중 ‘우리가 타고 싶은 재미있는 차를 만들어 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결국 회사를 설득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경량 로드스터에 MX-5의 이름을 올리는 데까지 성공신화를 이어간다. 1989년 출시된 MX-5는 경량 로드스터의 대명사로 불리던 로터스 엘란을 K.O 시킨 모델이기도 하다. 1세대 출시 이후 꾸준하게 인기를 얻으며 현재도 4세대가 생산되고 있으며, 2026년쯤 5세대가 등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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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는 아예 승용차 시장 진출을 경량 로드스터인 S360과 S500으로 시작했다. 상용차인 T360이 먼저 등장했지만 1962년 발표한 S360은 혼다의 첫 번째 승용차 모델이다. 360cc의 소형 엔진을 탑재한 S360은 이후 S500과 S600을 거쳐 S800으로 진화하며 1970년까지 생산되었다. 혼다가 첫 승용차로 경량 로드스터를 선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당시 유럽산 경량 로드스터의 인기가 높았고, 도쿄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 시작된 일본의 모터리제이션, 소형 바이크 엔진을 활용한 설계 등이었다.

거품 경제 시절 혼다는 NSX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미드십 레이아웃의 경형(경차 기반) 경량 로드스터인 비트를(1991년) 선보이며 마니아들 사이에 선충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여기에 스즈키 카푸치노가 가세하면서 한 동안 경형 경량 로드스터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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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간판 스포츠카인 페어레이디 Z(수출명 370Z)도 2인승 로드스터로 시작해 1959년부터 1970년까지 생산되었다. 이 모델은 이후 닛산(닷산)의 간판 스포츠카인 페어레이디 Z에게 그 이름을 넘겨준다.

경량 로드스터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생소한 장르이다. 세단 일색이던 한국 시장에서 스포츠카는 판매량이나 이미지리더로서 제대로 된 역할조차 하지 못 했다. 최근에는 그나마 수입차의 증가로 다양한 차들이 선보이고 있지만 저마다 내세우는 것은 고성능, 혹은 럭셔리뿐이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볼 때 한국 시장은 그에 걸맞은 다양한 자동차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거나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의 크기나 가격으로 신분을 가늠하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작은 차나 누구나 어렵지 않게 소유할 수 있는 차를 가지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 경량 로드스터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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