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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컨버전은 실패한 사업이다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클래식카에 전기 구동계를 이식하는 실험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재규어나 애스턴 마틴 같은 회사는 역대 손꼽히는 클래식 모델을 전기차로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래식카가 전기차로 구동계를 바꾸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전기차는 아니지만 싱어 같은 회사는 최신 모델의 내장재에 클래식 모델의 겉모습을 갖춘 차를 주문 생산하고 있지만 클래식카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카는 생산된 시대의 향수를 담고 있는 차를 뜻한다. 또한 올드카라는 용어와도 구분되며 원형이 보존된 오래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클래식카의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에 전기 구동계를 넣는 방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시장성과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프로토 타입(시험 생산 모델)이나 쇼카(전시용) 수준에서 끝난 경우가 많다. 클래식카를 전기차로 즐긴다는 것은 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형 보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마니아들이나 수집가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불편함도 오래된 기름 냄새도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개조된 오래된 차에 전기 구동계를 넣으려는 시도는 클래식카 EV 컨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부터 국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 프로젝트는 여건 상 취소되기도 했고 제대로 된 결과물도 나오지 않은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여전히 합리적이지 못 한 국내 자동차 법규의 문제가 가장 크지만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접근 방식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관련 법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고 있으면 기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전기 구동계를 이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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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등장했던 재규어 E 타입 제로는 재규어의 대표 클래식 모델 E 타입에 전기 구동계를 이식한 모델이다. 이미 재규어는 다양한 라인업의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에서도 활동 중이다. 재규어는 E 타입 제로를 통해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들이 가진 헤리티지와 최신 기술을 성공적으로 선 보였다. 원래 이 차는 양산 계획이 없었으나 공개 후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2019년 일반 판매에 들어간다고 재규어 측은 발표했다. 그러나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재규어 E 타입 제로의 소식은 ‘개발 중단’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재규어는 E 타입 제로의 양산 계획을 처음 발표했을 때 판매 조건에 대해 ‘재규어 E 타입을 소유한 고객의 차를 의뢰받아 내연기관을 제거하고 전기 구동계를 올리는 방식’이라고 명시했다. 쉽게 설명해 기존 재규어 E 타입을 소유한 소비자 중에 원할 경우에만 해단된다는 얘기다. 재규어 E 타입 제로가 개발 중단된 이면에는 E 타입이 가지고 있는 향수와 역사적인 가치가 전기 구동계의 편리함보다 훨씬 크다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재규어 E 타입을 소유한 사람 중에 이 차의 구동계를 전기로 바꾸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런 문제가 개발 중단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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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 역시 마찬가지다. 애스턴 마틴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컨버터블 DB6 마크 2 볼란테의 구동계를 EV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지난 2018년에 발표했다. 이 역시도 DB6를 가지고 있는 기존 소유자들이 대상이며 애스턴 마틴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카세트 시스템이라는 EV 제어 패키지를 개발했다. 카세트 시스템은 기존 내연기관을 대신하며 원할 경우 원래 내연기관으로 복구할 수도 있다. 애스턴 마틴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클래식 모델의 전기 구동계 컨버전이 기존 클래식카 수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주목은 크게 받았지만 소유자들과 컬렉터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클래식카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높기로 유명한 DB6를 가지고 있는 소유자 중에 선뜻 구동계를 바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부 오너들은 '컨버전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일상 주행용 차를 한 대 더 구입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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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클래식 미니나 포니 픽업 등 소형 보디를 가진 차에 전기 구동계를 넣는다는 계획인데 대부분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선 한국에서 클래식카의 전기 구동계 컨버전을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각보다 많다. 일단 클래식이라 불릴 만한 변변한 모델이(클래식카라 불리려면 최소 1975년 이전에 생산된 기회기 방식의 차) 없으며, 검증된 기술로 만들어진 자동차용 전기 구동계를 제작하는 곳도 찾기 어렵다. 전기 구동계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터를 이용한 전기 구동계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안전성에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일부에서는 RC카와 비슷하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RC카에 들어가는 소형 모터와 자동차에 쓰이는 모터는 원리만 비슷할 뿐 만들어 내는 토크나 토크 제어에 있어 판이하게 다르다. 이 부분은 기존에 자동차를 제작하던 제조사들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 전장품이 들어갈 경우 그 구조는 더욱 복합해지며 안전 검사와 형식 승인까지 생각하면 온전한 차 한 대 만드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국내에서 오래된 차든 최신 모델이든 내연 기관을 제거하고 전기 구동계로 컨버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동차 메이커에서 판매하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와 똑같은 형식 승인 과정과 안전도 테스트를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는 대량 생산 중심의 대규모 완성차 업체를 제외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기존에 있는 차체에 구동계만 바꾸는 것은 가능한데 국내 자동차 관리법 상 이때는 구조변경이 가능한 튜닝에 해당된다. 관련 규정은 국가법령정보 행정규정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자동차 튜닝에 관한 규정 제3장에 전기자동차의 튜닝 항목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http://www.law.go.kr/admRulInfoP.do?admRulSeq=2100000071969#J1852171)

대상은 등록하지 않은 신규 자동차나 등록 말소된 자동차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제조사가 기존의 자체를 구입해 전기 구동계를 장착할 수도 있고 소비자가 소유하고 있는 차를 제조사에 의뢰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안전성 확인 기술 검토를 받아야 하는데 이 항목에는 축전기의 위치, 제어 방식, 배터리 패키지의 구성 등 전기 구동계와 관련된 모든 항목이 포함된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번호판을 달기 위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역시 매우 복잡하다. 여기에는 안전도와 안정성 테스트도 포함되는데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단일 차종이라면 그나마 번거로움이 덜 하겠지만 모듈화 되지 않는 전기 구동계는 각 차종 별로 제작해야 하며 위의 조건을 충족해야 상품으로 출시할 수 있다. 물론 전시용이나 일반도로를 운행하지 않는 조건이 붙으면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국내에서 전기 구동계 컨버전을 내세우는 곳은 대부분 판매를 통한 수익성 창출에 그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익성 창출이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겉모습만 같다고 클래식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적합하지 못하다는 의미며 튜닝 자체가 원형 보전을 우선가치로 하는 클래식카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제작과 등록을 온전히 마쳤다고 해도 가격은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다. 일단 기존 내연기관과 거기에 관련된 전장 계통을 전부 탈거하는 공임에 차종 별로 판이하게 다른 모듈을 제작하려면 경제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검증도 안 된 중국산 모듈이야 몇 천 달러에도 구입할 수 있지만 이걸 기존 자체에 집어넣는 것 자체가 쉬운 과정은 아니다. 전기차 컨버전을 사업 모델로 내세운 회사들은 해외 사례를 들먹이고 있지만 해외에서 컨버전의 영역은 사업성이 매우 낮아 개인의 취미 내지는 실험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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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멋과 낭만이 있는 클래식카를 전기 구동계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다. 물론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의 헤리티지와 최신 기술을 배합해 새로운 모델은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재규어나 애스턴 마틴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동차도 몇 년 전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를 재해석한 45 EV 콘셉트를 발표하며 2021년쯤 양산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오닉 5로 등장한 45 EV도 과거 모델에서 몇 가지 디자인 요소만 차용했을 뿐 차체 크기도 커지고 45년 전 포니가 처음 나왔을 때의 시대상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 단지 마케팅적인 활용일 뿐 완전히 다른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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