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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카와 환경규제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바야흐로 친환경의 시대라 불리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다양한 친환경 소재가 해마다 등장하고 자동차 회사들도 저마다 친환경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전기차의 보급률도 해마다 높아지고(사실 전기차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친환경적이지 않다) 탄소 배출권과 친환경 관련 주식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배출 가스 규제는 매년 강화되고 있으며 아예 유럽 일부 국가들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껏 만들어진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한 번에 없어지거나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동차 선진국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친환경 자동차들과 기존 내연기관의 균형을 맞추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비합리적인 법률로 인해 클래식카 시장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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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클래식카 시장이 성장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한국 내 자동차 관련 법규이다. 클래식카라 불릴 변변한 차종이 없는 건 둘째치고 아버지가 타던 차를 아들이 물려받아 타거나 하는 일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차령이 20년 이상 된 차를 길거리에서 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도 아니며 자동차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만한 것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 중에 한 명은 아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독한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몇 년 전 어렵사리 구한 현대 그라나다를 정성껏 복원하며 종종 그 내용을 지인들과 공유했다. 지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매우 부러워했다. 할아버지와 추억이 가득한 이 차는 그에게 매우 특별한데 그는 이 차의 복원을 위해 전 세계의 부품상을 뒤졌으며, 풍물시장과 중고장터를 돌며 그 시절의 추억 가득한 소품도 하나씩 준비했다. 촌스러운 포장의 사랑방 사탕과 당시 성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주간지 선데이 서울, 1980년대 초반 사업가들이 사용했음 직한 알이 큰 은테 안경,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사각 티슈 케이스 등 그 시절 그라나다에서 볼 수 있었던 소품들이었다.

그의 차는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부식된 철판은 다시 만들어 붙이고 없는 부품은 제작하는 등 그는 이 차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 완성을 앞두고 지인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가족들과 함께 이 차를 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생명을 찾은 이 차가 도로에 나왔을 때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과 지인들, 가족들 모두가 환영을 했으나 서울시의 노후차 관련 법규는 그렇지 못했다. 추억이 가득한 이 차는 낮 시간에 사대문 안에서 운행할 경우 과태료 부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는 노후차에 대해 등급을 나누고 사대문 안 출입제한, 과태료 부과 등의 배출가스 등급제를 시행 중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된 경유차 억제로부터 시작된 이 정책은 배출가스저감장치(DPF)를 장착하면 운행이 가능하나 문제는 배출가스저감장치가 없을 경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까지 보면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비합리적이고 한국의 자동차 문화를 발전을 가로막는 억지가 가득하다. 운이 좋아 배출가스저감장치를 장착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라나다처럼 차령이 30년 이상 되었거나 구조적으로 배출가스저감장치를 달 수 없는 차들, 혹은 판매 대수가 적거나 남아있는 개체가 적은 차종은 멀쩡히 잘 달릴 수 있어도 유예기간이 지나면 폐차를 하거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국가가 제한하고 강제로 폐기를 유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현재 국내 자동차 관련 법규가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오래된 차, 혹은 클래식카에 대한 법률은 금지와 제한을 위해 존재할 뿐 자동차 마니아 혹은 취향에 따른 특정 소비계층을 위한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카가 거의 없는 이유와 해외 사례

일단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차는 법률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날로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 때문인데 몇 만 대 단위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 백대 수준의 오래된 차까지 현재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다. 더군다나 차령이 오래된 차를 일상 주행용으로 매일 쓰는 경우도 찾아보기 매우 드물다. 이런 이유로 오래된 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운행 일자 대비 세금과 보험에 있어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차를 외국에서 차를 수입할 경우 ODB2가 장착되지 않은 차는 연식을 불문하고 수입이 불가하다. 이삿짐으로 들여온 차들 역시 연식에 상관없이 당해 기준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1970년대에 만들어진 차가 2020년대의 배출가스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는 현재 정식 등록된 오래된 차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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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해외는 보다 합리적이다. 자동차 법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은 차령에 따라 세금이 할증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자동차 안전검사나 배출가스 검사도 자동차가 제작된 해 기준이다. 일본의 자동차 안전검사는 1972년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1972년 이전에 제작된 차들은 내수형이든 수입이든 안전벨트가 없거나 운전석에만 있어도 자동차 검사를 통과하는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에선 안전벨트에 대한 규정이 생긴 게 1973년부터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법규가 까다롭다고 하지만 일본은 꼼꼼하게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다. 환경기준부터 안전기준 등 자동차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법률을 까다롭게 심사하고 적용하지만 이들이 항상 염두에 두는 건 제작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과 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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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탄력적인 미국은 각 주 별로 자동차 관련 법규가 다르다. 대표적으로 워싱턴 주는 차령이 30년 이상 경과하면 클래식카로 등록을 할 수 있는데 클래식카로 등록되면 매년 부과되는 등록세를 면제받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각 주에서 정한 안전기준과 환경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불가능한 배출가스 기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른 주의 경우 차령 25년 이상 된 차들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취급하는데 이 역시도 제 조 년도에 따른 법률을 적용하며 일부는 차령에 따라 배출가스에 대한 시험도 면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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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대표적인 예는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인데 이들 역시 환경기준과 안전기준은 매년 강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제작된 자동차들이 불리하거나 비합리적인 처우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과 비슷한데 특정 차종이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차, 원형 그대로 보존된 차에 대해서는 특별 번호판을 발급하거나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특히 독일은 차령이 25년을 넘어갈 경우 각종 세제혜택을 비롯해 일년에 일정 기간만 운용할 수 있는 시즌 번호판 제도를 운영 중이다. 물론 모든 차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기준이 있고 오래된 차들에 대한 불이익은 없다.


한국에서 클래식카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이 교통수단 혹은 부의 과시 정도로 단편적이고 자동차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제의 역할이 여전히 크지만 자동차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기술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계 산업의 꽃이라 불리며 문화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는 자동차는 내가 필요해서 사는 것보다 남이 어떻게 보느냐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자동차 법률과 보험 체계가 신차 위주라 자동차를 오래 소유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고 하기까지 한다. 어찌 되었든 한국의 자동차 관련 법규는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특히나 법률 때문에 제대로 된 클래식카 시장이(관련 산업도 마찬가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글로벌 톱 5에 들어가는 생산량을 자랑하지만 법규나 문화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문화나 시장 규모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현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을 제외한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은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차들이 도로에 돌아 다니며, 모터스포츠나 튜닝, 클래식카에 있어서도 훨씬 규모가 크다. 심지어 최근에는 중국조차도 생산량뿐 아니라 다양성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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