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S한테서 온 10글자에 한숨이 잔뜩 묻어 있다. 정리를 마저 하고 방에 들어가 전화를 건다. "왜 그러시나~ 뭔 일이야"
S가 흥분한 목소리로 울분을 쏟아낸다. 분명 전화로 얘기하는데 바로 코 앞에서 침 튀기며 얘기하는 것 같다.
말도 마. 당최 못 살겄다. 아니 내 옷을 죄 쏟아놓고 싹 다 갖다 버리라잖아. 하도 속에서 열불이 나서 내 가서 함 물어볼라그래. 이 인간하고 더 살아야 되나 말어야 되나.
요는 이랬다. 장점이 많지만 정리 정돈엔 유독 취약한 S는 하필 사방이 깔끔하게 딱딱 정리가 돼야 심신이 안정되는 인간, 아니 남편분과 살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이 정리 문제는 얕잡아 볼 게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들 결혼 생활 전반에 걸쳐 자꾸 태클을 걸어왔으니까.
회사 일에 지쳐 집에 들어서는 순간 늘 현관에 제 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신발은 S 남편의 짜증버튼이었고,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 신발 열을 맞추며 늘어놓는 잔소리는 S의 맘을 상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맘이 상한 채로 대면 한 두 사람. 날이 잔뜩 서 있기 일쑤였고 급기야 오늘은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쌓아두기만 할 거면 죄다 갖다 버리라"며 행거 위 쌓여있던 옷에 화풀이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한참 울분을 토해내던 S 얘기에 "그래. 승질 날 만 하다" 하며 쭉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 반성모드로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쩐지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일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일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워낙 정리 정돈이랑 안 친한 우리 집 첫째는 꼬리가 길~~다. 물건을 쓰면 원래 자리가 아니라 쓴 자리에 정직하게 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난 그걸 고쳐보겠답시고 잔소리꾼이 됐었다. 하지만 잔소리의 유효기간은 턱없이 짧았다. 아이는 자꾸 깜빡깜빡했고 내 잔소리에 내가 지쳐 갈 때쯤, 이게 잔소리로 고쳐질 게 아니구나. 날 때부터 유난히 길었던 아이 발가락처럼 이것도 이 아이의 한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그 사람의 '개성'이라고 했던가. 첫째의 많고 많은 개성 중 하나로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먹은 대로 칼 같이 되면 마음도 아니지. 가끔씩 에너지가 바닥인 날은 나도 모르게 폭발하곤 했다. 물론 뒤돌아서기도 전에 후회하지만 말이다. 인정하자 대인배처럼 얘기했지만 꾸역꾸역 참고 있던 거였다. 내가 '정리 정리'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견디기 힘든 꼬장꼬장한 내 '개성'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후회할 일을 만들고 다시 마음 먹고, 여전히 도돌이표다.
"부모 자식 간은 아니지만 어쩌면 너희 남편도 나랑 비슷한 마음 아닐까" 했다. 보기 싫지만 자꾸 눈에 거슬리고, 타박 하고 싶지 않지만 하게 되는. 뭐 그렇게 생겨 먹은 개성.
울화통이 터져서 전화했다가 뜬금없이 나의 자기반성을 듣게 된 S는 한마디 했다.
"그치. 내 새끼 보니까 타고 나는 거지 싶더라. 각 잡고 열 맞추고 지 아빠랑 똑같으니까"
그렇게 S의 열불은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근데 난 왜 정리가 어려울까. 나 성인 ADHD 아니겠지?" 자기 한탄으로 이어지더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짠해"
'그 인간'에서 '그 사람'으로 통화는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오래 전 어느 날 S는 그를 처음 소개해 주며 '두리뭉슬한 본인과는 반대로 매사에 똑떨어지고 꼼꼼 깔끔하고 자기 관리 확실한 사람' 이라서, 그래서 끌린다 했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라는 게 참 짓궂다. 그 사람의 그 점 때문에 눈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하필 바로 그 점 때문에 눈이 뒤집히기도 한다. 유~한 매력은 속 터지는 우유부단함으로, 아이 같은 순수한 매력은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함으로, 유머 넘치는 매력은 주책맞은 깨방정으로. 결혼과 함께 서서히 그 이름이 바뀌면서 싸움을 부른다.
문정희 시인은 말했다. 결혼은 사랑을 무효화시키는 긴 과정이라고. 이 표현을 보고 난 문정희 시인은 시를 쓰는 철학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럴지 모르겠다. 그 긴 과정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왜 사랑이 이 모양 이 꼴이냐'며 열심히 싸우고 또 열심히 화해하고 있는 걸지도. 하지만 사랑의 게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그 와중에도 다행인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연민'이라는 묘한 감정이 효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째 이리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세상에 다 있나 싶다가도,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면 또 그 마음으로 같이 먹을 밥도 하고 영양제도 들이 밀고 하는 거 아닐까. 남편 목 뒤에 있는 점까지 밉다가도, 남성복 세일 코너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기웃기웃 대게 되는 건 그 짠한 마음 때문일 거다.
그나저나 용하신 분을 물었던 S는 아직도 그 분을 찾아뵙고 싶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누구보다 용한 분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걸 어쩌면 S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복채가 따로 없다보니 여간해서 답을 잘 안 주는 내 안의 그분께 해답을 구하려고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