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귀여움이 쉬질 않았던 시절이 아이에게도 있었다. 아이는 그 시절에 찍은 사진 속 자기를보고 있다.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나의 성장 스토리'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수업을 앞두고 학교에 챙겨갈 사진 몇 장을 고심고심해서 고르는 중이었다. 어찌나 신중한지 웨딩사진 고르는 예비신부 저리 가라다.
- 엄마 엄마, 이 사진 어때?
- 음.. 그건 표정이 좀 뚱한 거 같은데?
엄마 눈엔 이거 너무 예쁘다~ 이건 어때?
- 그래? 난 이게 진짜 잘 나온 거 같은데..
이런 대화를 몇 번 나누다 결국 사진 주인이 픽한 걸로 당첨이 됐다. 어차피 주인 맘에 들면 되는 거였으니까.
묵직한 앨범을 도로 책꽂이 위에다 올려놓고 내려오는데, 의자를 야무지게 잡아주고 있는 아이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난다. 배밀이 기술 하나로 온 집안을 쓸고 다니던 그 아이가 언제 저렇게 컸지. 언제 저렇게 커서 자기 의견을 재잘재잘 잘도 얘기하는 어린이가 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둘째는 이런 자기 모습을 좋아하는구나.
골라 놓은 사진을 보니 오 새롭다. 사람 보는 눈이 참 다르구나 새삼 느낀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잘 나온 사진'에 대한 '나와 타인의 차이'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사진을 볼 때 '나'는 나의 '단점'이 최대한 덜 부각된 사진을 좋아하지만,
'타인'은 그 사람의 '장점'이 최대한 더 부각된 사진을 보며 잘 나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덜'과 '더'의 차이. 장점과 단점의 차이.
그러니까 애초에 포인트를 두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봐도 대체로 그런 거 같다.
최대한 턱은 각이 실종되게,
태평양 같은 이마는 동해 앞바다 정도로만,
항상 쌍꺼풀이 수줍게 말려들어가 있는 눈은 최대한 졸려 보이지 않게 나온,
써놓고 보니 그냥 그림자를 찍는 게 낫겠다 싶지만 좌우지간 그런 사진들을 좋아했던 거 같다.
한 마디로 '최대한 잘 숨은' 그런 사진을 보며 '잘 나왔네'흐뭇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경향은 옷을 고르는 데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일단 다리 길이가 허리길이에 압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꽁꽁 숨겨주면서,
무릎 아래서 부터곡선으로 뻗어나간 다리 모양을 드러내지 않으며,
좁은 어깨를 최대한 넓어 보이게 해 주는
그야말로최선을 다해 커버해 줄
그런 옷을 주로 찾는 것이다.
그런 믿음직스러운 옷들은 스타일이 거기서 거기이기 마련이라 비슷비슷한옷들이 내 옷장을 늘 채우고 있다.
상의와 하의 구분만 하고 사는 심플한 남편은 내가 새로 산 옷도 엊그제 입던 옷을 깨끗하게 다려 입은 줄 알 정도다.
그렇게 커버를 위한 옷을 열심히 걸치고 사는 내가 최근에
옷 잘 입기로 유명한 배우 윤여정 님의 예전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쩜, 젊은 저희도 소화 못 하는 이런 옷들을 그렇게 소화해 내세요?"
MC의감탄에 그녀는 그 특유의 무심한 듯 쑥스러운 말투로
"아유, 그냥 입고 우기면 돼요. 뭘 소화를 해 소화를 하기는.
내가 내 돈 내고 사 입는 건데~~"
입고 우긴다.
나도 그녀 나이가 되면 저런 신박한 표현이 "아 배고파"처럼 아무렇지도않게 툭 하고 튀어 나올 수 있을까.
나한테 어울릴까 안 어울릴까.
단점이 더 도드라지면 안 되는데.
한마디로 이렇게 남 눈치 볼 거 없다는 얘기다.
연예인 협찬받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고 내가 좋아 사 입으면서 말이다.
길을 가다 보면 그런 사람을 볼 때 있다. 얼핏 안 어울린다 싶은 옷을 입은 거 같은데보다 보면 희한하게 설득이 되는 사람.
'나라면 저쪽을 가렸을 텐데'
'나라면 컬러에 힘을 좀 뺐을 텐데'
처음엔 이런 오지랖 넘치는 생각을 하며 눈길이 가지만, 그 당당한 걸음걸이와 표정에 어느새 설득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으면 됐지.
내 몸뚱이에 걸치면서까지 내가 누굴 설득시켜야 되나요?'
그들은 이렇게 온몸으로 말하는 거 같다.
그냥 입고 우겨보고 싶은 옷이 지금 내 옷장에도 한두 벌 곤히 잠자고 있긴 하다.
이게 나라고.
무턱대고 우겨보고 싶은 옷들이.
자기 생각. 자기 입장만 갖고 막무가내로 박박 우겨댄다면야 꼰대소리 듣기 십상이고 답 안 나오겠지만
옷으로 우기기 정도야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틀어놓는 바람에 이제는 내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