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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May 12. 2021

혼자 떠난 대만 여행 : 3편

게으른 여행자도 괜찮으시겠어요?



사실 내가 2년이나 지난 여행기를 뒤늦게 쓰는 이유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대만에서의 기억을 이제라도 글로 남겨 두고두고 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많이 희미해지긴 했다. 더 일찍 쓸걸. 후회가 남는다.


사진 출처 : 나 / 호텔 안


원래는 작년에도 대만을 갈 생각이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설렘으로. 하지만 망할 역병이 창궐하면서 포기해야만 했다. 아마 올해도 글러먹은 것 같다. 언제 다시 대만에 갈 수 있을지 모르니 나는 글로나마 대만을 추억하려고 한다.


오늘은 세 번째, 네 번째 날의 일정을 써보려고 한다. 네 번째 날은 짐 챙겨서 체크아웃하고 공항에 가기 바빴으므로 실질적인 여행은 세 번째 날이 마지막인 셈이었다.




세 번째 날은 비가 왔다. 원래 나는 비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챙겨야 할 짐도 많아지고, 그 특유의 축축한 습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달랐다. 해가 쨍쨍하던 그동안의 대만과 다른 새로운 대만의 광경을 만끽할 수 있었기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우산에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마저 악기처럼 들렸다.


사진 출처 : 나 / 오전의 용산사

폭삭 젖은 거리를 걸으며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용산사(륭산쓰)였다. 용산사는 내가 묵는 호텔에서 도보로 5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그날에서야 처음 가게 되었다. 용산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소문난 명소였다. 대만 현지 사람들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용산사를 찾아 간절하게 신께 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나 / 오전의 용산사

건축 양식이 달라서인지 한국의 사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느낌이었다. 입구에 위치한 폭포와 연못 등도 인상적이었다. 왜 이런 좋은 곳을 진작 와보지 않았을까. 마음만 먹으면 매일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용산사 내부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내부가 생각보다 넓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얼추 듣기론 신마다 이루어주는 소원이 달라서 ‘전문 신(?)’을 찾아가서 비는 편이 유리하다고 한다.


용산사엔 나를 포함한 관광객도 많았지만 현지인이 더 많았다. 그들은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든 신경도 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어떤 역사를 가진 신들인지, 또 각각 무엇을 관장하는 신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정성만은 느껴졌다.


그 사람들은 뭘 그렇게 빌었을까. 당시의 나처럼 힘든 일이 많았겠지. 건강, 학업, 자식, 사랑 등. 나는 무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진심으로 믿고, 그 신이 자신의 소망을 들어주리라 의심치 않는 마음들이 경이로워서 눈물이 눈물이 날 뻔했다. 만약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 경건한 마음들이 모여서 이룬 기적이 아닐까.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홀린 듯 나도 향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사람들을 따라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사실 소원을 비는 방법도 몰랐고, 그저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뿐이었지만 그건 내 인생의 가장 묘한 순간이었다. 특유의 향 냄새가 아직도 코 근처를 맴돈다.




용산사를 떠난 후엔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갔다. 대만에 왔으면 훠궈를 먹어야지! 하지만 혼자서 선뜻 훠궈 집을 방문하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2인 이상’이라고 못 박아둔 유명 맛집도 있었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여행책을 열심히 뒤져 1인용 훠궈 집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의 걸음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사진 출처 : 나 / 1인용 훠궈

둥먼 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찾을 수 있는 ‘스얼궈’라는 곳이었다. 개인 전기레인지가 있는 1인용 바 테이블과 다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일반 테이블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바 테이블에 앉았고, 그와 동시에 종업원이 한글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육수 종류를 고르고, 고기, 국수, 밥 등을 스스로 고르는 ‘커스텀 훠궈’ 느낌이라 어려웠지만 종업원들이 잘 소개해주셔서 무사히 주문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나 / 소고기는 왜 이렇게 예쁘지?

훠궈에서도 나는 빨간 육수와 소고기를 잃지 못했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청경채, 버섯 등을 천천히 넣고 있으니 싱싱한 소고기가 도착했다. 육수에 넣자마자 바로 색이 변하는 소고기와 채소를 함께 넣으니 입에서 그냥 살살 녹더군. 나는 허겁지겁 음식을 흡입했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깔끔한 식당 내부, 적당한 양, 혼밥족을 눈치 주지 않는 직원들, 귀여운 한국어 메뉴판까지. 소소하지만 혼자 즐기기 딱 좋은 만찬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향한 곳은 융캉제였다. 응? 융캉제. 전 편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전날 골동품 시장을 가는 길에 지나쳤던 거리였다. 여기서 나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나는 마음에 들었던 것은 꼭 다시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여행을 와서도 그 성격이 발휘되었다. 누군가는 거기까지 가서 똑같은 곳을 가면 시간 낭비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비가 오지 않았는가.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있다.


때마침 훠궈 집도 둥먼 역, 융캉제도 둥먼 역이었던 덕에 아주 짧은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나 / 비 오는 융캉제

예상대로였다. 어제와는 완전 다른 세계였다. 파스텔 톤의 그림에 살짝 더 색깔을 더해 짙어진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후식으로 먹을 망고 빙수를 찾는 것이었다. 사실 망고 빙수로 유명한 곳은 따로 있었지만 나는 그냥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 느낌의 망고 빙수집이었다.


사진 출처 : 망고 빙수

홀로 먹기엔 좀 많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꼭 먹어보고 싶어 씩씩하게 쟁반을 내려놓았다. 다른 테이블에선 내가 시킨 양으로 2~3명 정도가 나눠 먹고 있었다.


빙수 위엔 망고 아이스크림이 얹어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입 먹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망고 빙수 그 자체였다. 더 특별할 것도, 더 별로일 것도 없는. 너무 기대를 했던 건가.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이라서 빙수를 먹고 있자니 점점 추워졌다.


앞 테이블에선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어였다. 한국에서 단체로 놀러 온 관광객들인 모양이다. 정겨운 한국어를 들으며, 익숙한 망고 빙수를 먹고 있자니 꼭 설빙에 온 기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말이지 망고 빙수도 잘 만든다니까.


사진 출처 : 나 / 초록초록

오돌오돌 추위를 느끼던 나는 곧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그저 풍경을 바라보며 목적 없이 걷는 것 같았지만 중간중간 잡화점에도 많이 들어갔다. 가족들을 위한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고(이게 바로 고난의 시작이었다.) 내게 남은 것은 사진뿐이었다.


비 오는 대만, 센치한 타이베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시먼 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까르푸였다. 이곳은 대형 슈퍼마켓이었는데, 오롯이 기념품을 사려고 방문했다. 내부는 한국의 대형마켓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넓은 마켓을 빙빙 돌았지만, 마땅한 물건은 역시 없었다. 굳이 대만에서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사고 싶었다.


사진 출처 : 나 / 시먼홍러우

그래서 다시 시먼 역 1번 출구 쪽으로 걸어가 서문 홍루(시먼 홍러우)라는 곳을 갔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타이베이 최초의 팔각 극장이다. 시먼 역 1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기 때문에 찾기 힘들진 않다. 빨간색의 벽돌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현재는 극장이 아닌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바로 앞에서는 플리마켓이 열린다고 하길래 기대하고 갔다. 여기에서는 기념품을 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플리마켓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념품을 향한 여정을 다시 떠나야 했다.


이번엔 시먼 역 6번 출구에 있는 서문정(시먼딩)으로 갔다. 역시나 구면인 곳이었다. 첫째 날에 갔던 바로 그 번화가였다. 명동 같은 곳이니 기념품 가게가 있겠지.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녀도 기념품 가게는 없었다. 결국 내가 구매한 것은 겨우 열쇠고리, 병따개 등이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물 중 가장 비싼 것은 스타벅스에서 샀던 동생의 텀블러였다. 대만의 스타벅스에서만 나오는 특별판이라 나도 탐이 났다.


그렇게 기념품 쇼핑을 하느라 하루가 거의 다 갔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사진 출처 : 나 / 초밥

저녁으로는 시먼딩에서 사 온 초밥을 먹었다. 대만의 초밥은 가격이 쌌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산 초밥이라 그런지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살짝 비렸다.


원래는 그렇게 일정이 끝이 나야 했는데,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아쉬워졌다. 그래서 나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오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용산사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밤에 보는 용산사는 조명이 호화찬란하기 때문에 오전과는 다른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대만 가시는 분들은 꼭 용산사를 두 번 가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사진 출처 : 나 / 밤의 용산사

낮의 용산사와 밤의 용산사는 마치 다른 공간 같다.


사진 출처 : 나 / 2년 전에 내가 샀던 성공 부적

밤에도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용산사를 한 번 쭉 둘러보고서 출구가 있는 곳에서 귀여운 부적 하나를 샀다. 연애, 건강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성공’을 비는 부적을 골랐다. 그 당시에 일이 너무 안 풀려 답답한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책상 근처에 걸어두고서 빈다. 성공하자. 올해가 아니면 내년이라도.


사진 출처 : 나 / 귀여운 신호등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봤던 귀여운 신호등이다. 한국과는 달리 자박자박 걷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용산사 주위는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혼자 다니기에 무섭지 않을 만큼 밝았다.


사진 출처 : 나 / 달걀 샌드위치

호텔로 돌아와서는 마지막 남은 초록색 입욕제를 풀고 몸을 녹였다. 그리곤 편의점에서 산 달걀 샌드위치와 맥주로 여행의 셔터를 내렸다.


이제 자유로운 여행을 뒤로하고, 미뤄둔 일상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사진 출처 : 나 / 마라면

다음 날은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초조해서 좀 빨리 움직였더니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출국 전에 해야 할 일을 모두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공항 내 음식점에서 마라면을 먹었다. 대만다운 식사였다.


사진 출처 : 나 / 안녕, 대만

그리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대만의 공항을 눈으로 담았다. ‘내년에 또 와야지. 그땐 타이베이를 벗어나 보는 거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촬영 장소인 핑시도 가서 풍등도 날려보고!’ 대충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난 몰랐지. 그게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줄은. 여행기를 마무리하려니 더욱 울적해진다. 언제쯤 역병이 종식되고, 정상적으로 돌아갈까. 주위 상황들에 너무 지쳐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지금, 여행이 더 간절한 것 같다. 그래도 난 죽기 전에 대만에 꼭 다시 갈 거야.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얼른 끝나라, 진짜. 좋은 말 할 때.



※ 대만 여행 당시 '저스트고 타이완'이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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