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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May 11. 2021

혼자 떠난 대만 여행 : 2편

게으른 여행자도 괜찮으시겠어요?


다들 1편에서 예상하셨겠지만 나의 여행 반경은 아주 좁다. 모든 게 타이베이, 그것도 호텔 주변에서 다 이루어진다. 일단 타이베이만으로도 구경할 게 아주 많기도 하고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여행 스케줄을 널널하게 짰다. 길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싫어 먼 곳은 아예 여행 경로에서 빼버렸다. 호텔에서도 느긋하게 나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게으른 여행을 즐겼다.


사진 출처 : 나 / 호텔에서 본 대만의 아침


우울했던 첫째 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신기하게도 나의 기분은 다시 좋아졌다. 어제는 그저 처음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창문가에 걸터앉아 아침 전경을 내려다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였지만, 아침 특유의 분위기는 한국과 비슷했다.




아침 겸 점심은 타이베이처잔 역 6번 출구에 위치한 팀호완이란 곳에서 먹었다. 꽤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고, 메뉴판에 영어가 함께 있어 주문하기 편했다. 결론적으로 맛이 좋았다.


이미지 출처 : 나 / 매운 우육면과 새우 딤섬


나는 매운 우육면새우 딤섬을 골랐다. 그곳의 매운맛은 한국의 매운맛과 달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라 향이 났던 것도 같다. 딤섬은 솔직히 만두와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얇은 피와 새우가 통째로 씹히는 듯 좋은 식감. 조금 더 먹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될 정도다. 진짜 최고.




사진 출처 : 나 / 국림 중정기념당의 웅장함

식사 후엔 국립 중정기념당(궈리 중정지녠당)에 갔다. 이곳은 중정지녠당 역 5번 출구에서 올라오면 바로 갈 수 있다. 중국 특유의 화려한 건물 양식과 돌계단 등을 아주 잘 구경할 수 있다. 유명 관광지인 만큼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정말 넓고, 더웠다. ‘대만 더위도 견딜 만 한데?’라며 생각했던 나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대만에 왔다면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명소임은 분명하다.


사진 출처 : 나 / 멋진 근위병

그중 하이라이트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위병 교대식이었는데, 정시 가까이가 되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곳에 보여 카메라를 꺼내 드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을 든 근위병들이 로봇처럼 각을 맞추며 딱딱 걸어가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것은 교대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퍼포먼스에 더 가까웠다. 넋을 놓고 보느라 카메라가 어떤 각도로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더운 날씨에 참 고생들이 많군요.




국립 중정기념관을 나와서는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흡입하고 MRT를 탔다. 둥먼 역 5번 출구에서 융캉제를 따라 도보 10분을 걷다 보면 나오는 소화정문물시장(자오허딩원우스지)라는 골동품 시장에 갔다.


사진 출처 : 나 / 융캉제


걷다 보니 거리가 일본을 많이 닮아 있었다. 대만 사람들은 일본의 문화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신기했다. 그들도 일본의 식민지였을 텐데. 물론 우리나라에게 했던 만큼 잔혹한 통치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출처 : 나 / 골동품 시장


아무튼 몇 번 헤매다가 골동품 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주말이어서 대부분의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골동품 구경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아쉬웠다. 그나마 밖에 전시되어 있는 몇몇의 물건들로 미루어보아 주로 불상이나 그 외의 신의 조각상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인 모양이다.


사진 출처 : 나 / 귀여운 한글 간판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융캉제를 따라 걷던 중 귀여운 한국 간판을 발견했다. 대만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긴 한 모양이다. 너는 이미 사고 있다. 굉장히 문학적인 오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띄어쓰기까지 생략하다니. 더욱 자세히 봐야 한다.


사진 출처 : 나 / 마사지 대기 중

때마침 발마사지샵이 나타났다. 국립 중정기념관에서 너무 오래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아파오던 찰나에 운이 좋았다. 그리고 친구가 대만 가면 꼭 발마사지를 받으라고 했던 조언이 떠올라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말했다. “Money first.” 선불이란 소리다. 돈을 지불하고서 따뜻한 불에 발을 담그고 대기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머니가 아닌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잘생긴 남자가 말이다! 1편에도 언급한 적 있던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에 나오는 왕대륙 배우를 닮았다. 대만의 미남들은 왕대륙 스타일이 많구나. 어쨌든 왠지 부끄러웠다. 난 여자에게 받고 싶었는데.


그래도 마사지 능력은 정말 뛰어나셨다. 피곤했던 하루가 리셋되는 기분? 덕분에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셰셰, 왕대륙 닮은 마사지사님.



사진 출처 : 나 / 화산1914원화촹이찬예위안취


컨디션을 완벽히 회복하고서 중샤오신성 역 1번 출구에 있는 화산 1914 원화촹이찬예위안취에 갔다. 이곳은 낡은 양조장을 개조하여 만든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여러 전시장, 상점 등이 많아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오르골을 파는 상점이 유달리 컸다는 건데, 오르골의 매력을 그때 알았다.


사진 출처 : 나 / 화산1914원화촹이찬예위안취

또 광장 같은 곳에선 아이들을 위한 마술 공연이 있었다. 중국어로 말해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공연자의 행동만 봐도 내용은 얼추 이해되었다. 작은 쇼에도 아이들이 환하게 웃어 정말 귀여웠다. 아이들은 구경하느라 한참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젠탄 역 1번 출구에 있는 스린 야시장이었다. 원래 대만은 야시장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실제로 길거리 음식도 많았고, 구경거리도 많았다.


근데 야시장은 정말 누구와 같이 가는 게 훨씬 나을 뻔했다.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았는데 나 혼자라 다 사 먹을 수가 없었다. 또한 맛있는 집은 줄이 길었는데 혼자 서 있자니 너무 따분했다. 결국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맨 끝에 고른 메뉴는 겨우 망고와 소라 꼬치였다.


사진 출처 : 나 / 대만의 망고와 스타 프루트

한국에선 비교적 비싼 편인 망고를 대만에선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망고 위에 스타 프루트를 서비스로 올려주시며 “This is for you.”라고 하셨다. 어찌나 스윗하시던지. 혼자 와서 뻘쭘하던 기분이 좀 가셨다.


사진 출처 : 나 / 닭꼬치 같지만 소라 꼬치


그다음 소라 꼬치는 내가 워낙 해산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골랐다. 사실 소고기를 더 먹고 싶었는데 줄이 너무 길었다. 소라 꼬치에는 전형적인 닭꼬치 양념이 발려 있어서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전날보다는 꽉 찬 나의 둘째 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오히려 더 피곤했는데도 우울함은 덜했다. 나는 진정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초면이었지만 대만이라는 나라가 너무 좋아졌다.


제일 좋았던 건 사람들의 친절함이었다. 물론 이들 중에도 무례한 사람은 있겠으나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좋았다. 내가 더듬더듬 어설픈 영어로 길을 물어도 단 한 사람도 짜증 내는 법 없이 자상하게 알려주셨다. 심지어 내 목적지까지 같이 가주신 분도 계셨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나도 다짐했다.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호텔로 돌아와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한국어가 나오는 유튜브를 트는 대신 대만 야경을 만끽하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아, 아름다운 인생.


사진 출처 : 나 / 대만의 편의점 음식


그날 내 일정은 끝났지만 나의 먹부림은 끝이 나질 않았지. 호텔 바로 아래의 편의점에서 사 온 야식들을 풀어놓고 나만의 작은 파티를 열었다. 녹차, 무슨 와사비 마요 삼각김밥, 컵라면, 계란 참치 샌드위치, 맥주였다.


사진 출처 : 나 / 가장 기대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컵라면

라면은 잘 몰라서 그냥 맵고, 소고기가 들어간 걸 샀다. 내가 한국에서 먹던 음식과 그나마 비슷해 보였기 떄문이다. 하지만 컵라면은 실패였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국물에서 특이한 향이 났다. 옆에 있는 삼각 김밥도 실패였다. 당최 무슨 재료가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더 어리둥절했다.


그나마 성공한 것은 샌드위치였다. 대만 샌드위치 맛있다는 소문은 들었어도 편의점 샌드위치까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특히 달걀 샌드위치가 좋았다. 빵은 폭신하고, 사이에 낀 재료들은 담백했다. 한국에 들어와서까지 생각나던 맛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샌드위치에 맥주를 곁들이며 그날 일정은 끝이 났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퍽 즐거웠고, 자유롭게 일정을 짤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혼자서도 척척 해내니 정말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이래서 다들 혼자서 여행 다니는구나.


에어컨을 끄고 이불속에 몸을 파묻으며 나는 속삭였다. I love Taiwan.



※ 대만 여행 당시 ‘저스트고 타이완’이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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