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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May 08. 2021

혼자 떠난 대만 여행 : 1편

게으른 여행자도 괜찮으시겠어요?


요즘 들어 혼밥(혼자 밥 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등이 유행하면서 혼자 하는 시리즈들이 대중화가 되고 있다. 나는 사실 혼자서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2019년, 얼떨결에 ‘혼자 여행’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따분한 일상에 지쳐 있었고, 열심히 노력해도 성과가 없는 지지부진한 본업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겐 새로운 자극과 터닝포인트가 간절했다. 그 모든 것을 충족해줄 것에 해외여행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가장 가까운 비행기표부터 예매했다. 오래 생각하면 다시 망설일 스스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 즉흥적인 인간이 될 필요가 있었다.


사진 출처 : 나 / 여권과 비행기표


여행지를 ‘대만’으로 선택한 것은 일단 한국과 가까워서였다. 비행기로 2시간 30분가량이면 갈 수 있는 나라였다. 그리고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 대만이 치안도 좋고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더 끌렸던 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나 ‘나의 소녀시대’ 등 대만 영화를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다. 대만 특유의 유치하고 풋풋한 첫사랑 영화를 좋아해 5번은 넘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영화 속 배경을 보며 언젠가 한 번쯤은 꼭 대만에 가겠다는 다짐을 했던 터였다.


비행기표를 끊은 뒤에는 호텔을 예약했다.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까 숙소에 여행 경비 중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인터넷을 뒤져 한국 여행객들의 평이 좋고, 교통편이 좋은 호텔을 골랐다. 약간 비쌌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열심히 일한 내게 선물을 주고 싶었으니까.


그다음엔 낡은 캐리어를 예쁜 새 캐리어로 교체했고, 대만에서 입을 옷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당시가 6월이었기에 주로 얇은 옷들이었다. 햇빛 가리기용으로 밀짚모자도 샀는데, 그걸 쓰자 정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되어 콧바람이 절로 나왔다.


여행은 준비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했던가. 만사를 귀찮아하던 나는 짐을 여러 번 고쳐 싸면서도, 여행 가이드 책으로 시험을 칠 듯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마냥 설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망의 출국일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공항까지 태워다 주셔서 편히 갈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정말 낯선 도시에 나 홀로 착륙한다. 그곳에선 말도 통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히 없다. 그제야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텐데, 평생 살던 곳을 떠나는 것은 늘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 나 / 비행기 안


심란해진 마음으로 직접 만든 여행 노트를 복습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었다. 아무튼 비행기가 이륙하고 내가 살아온 도시들이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높은 건물이 개미만 해지더니 아예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땐 원래 가지고 있던 두려움에 해방감이 추가되었다. 3박 4일이란 짧은 일정이었지만 난 이제 놀기만 하면 되는 거다! 야호.


멍하니 창밖을 보는 사이 2시간 30분은 빨리 지나갔다. 집에 있었다면 영화 한 편 볼 정도의 시간이었다. 비행기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며 처음 보는 도시의 전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새하얀 풍차였는데, 노트에도 대만에 대한 첫인상을 ‘풍차’라고 적을 정도였다.


공항에서 내려서는 유심칩과 이지카드(현지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공항철도에 올라탔다. 종점인 타이베이처잔역에서 내려서는 택시를 잡았다. 숙소가 용산사(룽산쓰) 근처였기에 택시 요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택시 기사님은 아주 친절하셨고, 내 캐리어를 정성스럽게 싣고, 또 내려주셨다. 다만 영어를 하지 못하셔서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내게 일본어로 대화를 신청했다. 대만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서 아시아계면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어 까막눈이라 그 대화에 대꾸를 못 해드린 게 정말 죄송했다.


사진 출처 : 나 / 호텔 객실 안


그렇게 무사히 호텔에 도착해서는 간단한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객실로 들어왔다. 비싼 돈을 주고 잡은 덕에 호텔은 몹시 쾌척하고, 예뻤다. 간단하게 짐 정리를 마치고 첫 번째 날 여정을 시작했다. 그때가 거의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딱 두 곳만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용산사(룽산쓰) 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시먼 역의 시먼딩(서문정)과 숙소 근처의 박피료 역사거리(보피랴오리스제취)였다.


시먼 역 6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나오는 시먼딩(서문정)은 한국의 명동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번화가였다.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으며, 각종 물건을 파는 잡화점, 오락실 등이 있었다. 유명한 식당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으나 나는 구석진 국숫집을 선택했다. 관광객 입맛에 맞춰진 요리가 아닌 현지 입맛에 가까운 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나 / 맑은 국수


국숫집은 친절한 사장님과 쾌활하신 사모님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국수에 들어가는 고기를 고를 수 있었는데 나는 가장 무난한 소고기를 선택했다. 낯선 도시에서 홀로 밥을 주문한 스스로가 뿌듯해 주변을 막 둘러보다가 주인 부부와 눈이 계속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활짝 웃어주셨다. 내가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셰셰(감사합니다)”뿐이었는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 호응해주셨다.


사담이지만 맑은 국물의 소고기 국수를 먹고 있을 때쯤, 누군가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시아계 여자분이셨는데, 왠지 한국인처럼 느껴졌다. 왜, 말을 안 해도 느껴질 때가 있지 않는가. 그분도 혼자 여행을 오신 것 같았다. 말을 걸어 친구가 되고 싶었다. 여행 정보도 공유하고. 하지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소심한 나는 조용히 국숫집을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다.


부른 배를 진정시킬 겸 시먼딩(서문정) 거리를 걸어 다녔다. 어딜 가든 젊은 사람들은 활기가 넘친다. 그들의 중국어 수다를 듣고 있자니 대만 영화가 떠올라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들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겠지.


그곳에서 사람을 모아놓고 묘기 비슷한 것도 하기에 한참 구경했다. 댄스와 묘기 그 중간 것 같았는데 자신의 일에 심취한 청춘들이 찬란했다. 아마 피곤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봤을 것이다.




시먼 역에서 다시 용산사(륭산쓰) 역으로 돌아와서는 박피료 역사거리(보피랴오리스제취)로 갔다. 입장료는 무료였고, 거리도 그다지 길지 않아서 금방 구경할 수 있었다. 높은 건물들과 신식 상점들이 즐비한 타이베이에 위치한 ‘올드 타이베이’라고 볼 수 있다.


청나라 시절 건축물이 드라마 세트장처럼 펼쳐져 있어서 예전 건축물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제격인 곳이었다. 이국적인 창문틀과 계단 난간 등은 우리가 가깝지만 새삼 다른 나라라는 걸 상기시켰다. 진짜 마음에 드는 곳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으로 남은 게 없다.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사진 출처 : 나 / 입욕제


간단한 일정을 끝내고 드럭 스토어에서 입욕제를 산 나는 터덜터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 고된 스케줄은 아니었는데 처음이라 긴장을 했기 때문인지 발도 아프고, 온몸이 으슬으슬했다. 따뜻한 물을 받고 욕조에 입욕제를 넣었다. 핑크색으로 변하는 물을 보고 있자니 시각적인 피로 회복 효과가 있었다.


내가 만든 나만의 핑크 욕조에 들어간 나는 맥주를 하나 까서 마셨다. 욕조는 창가에 있어 타이베이의 야경을 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목욕 전 짧게 들은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웠는지 살짝 울적해졌다. 결국 나는 그 좋은 광경을 두고 유튜버를 켜 한국어를 들었다.


사진 출처 : 나 / 호텔에서 본 야경


나른한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는 YTN 뉴스를 틀었다. 희한하게도 한국 방송 중 유일하게 YTN이 신호가 잡혔다. 평소라면 금방 돌리고 말았을 뉴스를 오랫동안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솔직히 첫날엔 혼자 여행 온 걸 조금 후회했다. 외로웠고, 낯설었고,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내가 남은 일정을 계속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진짜 여행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난 진정한 대만을 즐길 수 있었고, 마지막 날엔 아예 대만을 떠나기 싫다는 마음이 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2편을 기대하셔도 좋다.



※ 대만 여행 당시 ‘저스트고 타이완’이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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