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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Jul 19. 2021

알레르기를 이겨내라뇨?

이게 무슨 고난과 역경도 아니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여러 가지 알레르기가 있다. 물론 고대 시대에도 알레르기는 있었겠지만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던 시절, 혹은 왕건이 고려를 세웠을 무렵에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존재했을 리 만무하니 알레르기 환자는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아무튼 내게도 여러 가지 알레르기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도 있고, 나이가 들며 하나씩 생겨난 것들도 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1. 햇빛 알레르기 : 사실 이런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몰랐다. 그저 난 외부 활동이 내겐 참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피부에 빨간 발진이 생기고 그 부위가 간지러웠다. 이게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외 활동을 길게 한 날이면 난 꼭 약한 몸살 증세를 겪는다. 가끔은 두통을 느낄 때도 있다. 낮에도 암막 커튼을 치는 걸 좋아해 가족들은 나를 ‘뱀파이어’라고 했다. 정신과 선생님이 낮에 산책을 자주 하라는 진단을 내렸기에 요즘 이 알레르기 때문에 퍽 곤란해졌다.


이미지 출처 : 픽사 베이

2. 온도 알레르기 : 이건 항상 발현되는 건 아니고, 내 몸이 정말 지쳤거나 면역체계가 무너졌을 때 나타난다. 특히 겨울철 따뜻한 실내에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면 특정 부위가 오돌토돌해지며 부풀어 오른다. 간지럽고 따가움을 느낀다. 이 역시 이따금 산책의 애로사항을 만들어낸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3. 먼지 알레르기 : 청소를 하거나 이사를 할 때면 마스크를 써도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다. 코가 빨개지도록 긁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 심한 날에는 택배만 뜯어도 알레르기 증상이 올라온다. 엄마도 먼지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 둘은 한 번 재채기를 시작하면 일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4. 키위 알레르기 : 이건 내가 다섯 살 때 처음 발견한 것인데 그때 키위를 처음 먹어본 것이라 원래 갖고 있던 알레르기인지 자라면서 생긴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키위 첫 경험은 내게 아주 강렬한 경험인데, 시큼한 그것이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혀가 마취라도 한 듯 얼얼해졌다. 얇은 바늘이 수없이 입 안을 찌르는 듯 쓰라렸다. 목구멍에 수억 개의 털이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키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움찔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 저 사진만 봐도 몸이 간지럽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5. 고양이 털 알레르기 : 한땐 나의 전부였던 반려묘를 키우며 알게 된 알레르기다. 데리고 와서 알았다. 내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하지만 이미 함께 집에 온 이상 가족이었으므로 내가 참아내야만 했다. 매일 약을 먹이며 견뎠다. 햇빛이나 먼지 알레르기처럼 내가 피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반려묘는 나와 같이 사는 사이였으니까. 그럼에도, 맹세하건대 그 천사를 데려온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 모든 걸 쏟아부어 사랑했고, 아꼈다. 애처롭게도 나의 회색 천사는 2015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6. 복숭아 알레르기 : 20대 중반에 생긴 알레르기다. 정말 애통한 사실은 내가 과일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복숭아라는 것이다. 키위 껍질과 비슷한 어떤 것이 내 면역체계를 건든 모양인데, 어느 날 문득 생겼다. 발과 팔목, 목 등에 무수히 많은 두드러기가 올라오며 간지러움을 유발했다. 계절이 여름이었던 터라 모기가 물렸나, 했다. 하지만 어느 모기가 그렇게 광범위하게 사람을 문단 말인가. 그러다가 배 터져 죽지. 검색 결과 나는 그게 복숭아 알레르기 증상이란 걸 알게 됐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7. 새우 알레르기 : 20대 후반에 생긴 알레르기다. 이것도 퍽 슬픈 이야긴데, 나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선호하는 해산물이 새우 알레르기다. 이쯤 하면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건가,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든다. 심한 편은 아닌데 종종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혀끝이 알싸하다. 특히 껍질을 먹을 때 심해진다. 복숭아 알레르기 때와는 달리 곧바로 검색해보고 알아차렸다. 물론, 억울함에 땅을 쳤다. 퍽퍽한 인생,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8. 토마토 알레르기 : 비교적 가장 최근에 생긴 알레르기다. 아빠가 놀리는 땅에 토마토를 재배하시는데, 엄마는 그걸 아침마다 갈아 냉장고에 두신다. 먹는 약이 있어 아침 식사는 꼭 챙겨 먹어야 하는데 밥이나 토스트는 입맛이 없어서 영 당기지 않았다. 그런 내게 좋은 대체제가 되어준 것이 바로 토마토 주스다. 직접 재배한 토마토에, 약간의 꿀을 첨가한 것이라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침이라 생각했는데 알레르기가 생겨버렸다. 다른 알레르기처럼 혀가 알싸하고, 알 수 없는 쓴맛이 난다.




대충 정리해 본 알레르기만 해도 이 정도다. 아마 아직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알레르기도 있을 테고, 지금까지의 추이로 보아 새로운 알레르기가 생길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렇듯 조금 예민한 몸을 가지다 보니 나는 싫어하는 게 많고, 조심하는 게 많다. 한 번 알레르기 증상이 돋으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몸으로 느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런 내가 유난이라고도 하고, 까탈스럽다고도 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나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알레르기 증상이 없거나 무딘 사람은 잘 모른다. 알레르기 생각보다 더 사람에게 치명적이고, 심하면 기도를 막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걸.


“말도 안 돼. 알레르기로 죽는 사람이 어디 있어.”


놀랍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건 개인 기호로 인해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을 위해서 회피하는 것이니 나는 나를 향한 모든 평가를 뒤로 하고서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뜻을 굽히지 않으면 그다음에 돌아올 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모두가 하는 그 말, 갖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 사람이 사랑하는 바로 그 말.


“이겨내.”


이겨내 보라고 한다. 그깟 알레르기에 지지 말라고 한다. 나약하게 굴지 말라고 한다. 이겨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겨내지 못할 건 없다고.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도대체 알레르기란 건 어떻게 이겨내는 건데.”


그러면 또 신박한 대답이 돌아온다.


“피하지 말고 맞서야지. 아니면 몸을 건강하게 해서 면역체계를 단단하게 하든지.”


맞서란다. 인간이, 알레르기에게.


알레르기가 통증 같은 것인 줄 아는 모양이다. 이상 증상이 느껴질수록 더욱 보란 듯이 섭취하다 보면 무덤덤해질 것이라 믿는 것 같다. 나는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알레르기의 원인이 오롯이 내 약한 면역체계의 문제라면 건강한 사람들이 알레르기가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알레르기의 원인과 해결법을 어쩜 그렇게 확신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내가 느낀 바로 알레르기는 절대 의지로 이겨낼 수 없다. 내가 다시 태어나거나 의학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지 않는 이상.


알레르기란 놈을 만나면 그저 피하고,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을 먹어 달래는 것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거다.




요즘은 한국도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할 때 알레르기부터 조사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알레르기를 단순히 ‘곱게 자란 아이들의 엄살’쯤으로 여겼다. 오히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숨겨야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아직도 알레르기에 쩔쩔매는 사람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존재한다.


알레르기에 관대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기 위해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구나,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에게 너무 모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레르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요?


아니요. 피할 수 없다면 더 피해야 합니다. 전 알레르기로 고인이 되고 싶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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