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코스 걷기
오늘 코스는 어제 코스보다 3km 정도가 더 길다. 게다가 핸드폰 일기예보에는 종일 비그림이 표시되어 있다. 아침을 먹기 전 민박집 마당을 둘러보다 엎어놓은 화분 물구멍 사이로 괭이밥이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분의 물구멍 세 개가 눈, 코, 입처럼 보이는 것이 디카시 소재가 될 만한 장면이라는 생각에 사진을 두 컷 찍었다.
국숫집도 함께하는 민박집 사장님이 차려 주신 계란을 휘휘 푼 떡국을 먹고 8시 30분경에 출발했다. 10시쯤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출발할 때부터 가는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지는 게 보여서 우의를 꺼내 입었다. 원자력 발전소 주변이거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곳을 지나는 구간이라 봉태산 숲길을 지나 나사 해변으로 가는 길은 화려한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하던 어르신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예전에 비해 전기를 정말 많이 쓰고 있지 않냐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길이었다.
봉태산 숲길을 지나 평지로 들어서니 미나리를 수확하고 걷어낸 미나리 줄기 덩어리들이 곳곳에 보였다. 걷기 시작한 지 2시간쯤 지나서 비를 맞으며 걷던 k가 빗방울이 굵어지자 우의를 꺼내 입었다. 명산리를 지날 때는 ‘제味대로‘라는 가게 옆 길로 가야 되는데 안내 표시를 제대로 안 보고 ’ 제멋대로‘ 걷다가 한참을 누루누비앱을 켜고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신암리 바닷가 쪽으로 나올수록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비옷 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우산까지 쓰고 걸었다. 해파랑길을 며칠 걸으며 알 게 된 것 중 한 가지. 기운이 넘치는 오전에 조금 빨리 걸어서 이만보를 채우고 점심 식사 후 만보 정도를 걸으면 코스의 종점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오전에 조금이라도 더 걸어서 간절곶 가까운 곳까지 가서 점심을 먹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 나사리 바닷가까지 가서 전복밥과 새우장 덮밥을 먹었다. 식사 후 k는 식당에서 빌린 가위로 뚝딱뚝딱 조물딱조물딱 하더니 까만 비닐봉지와 고무밴드를 이용해서 운동화에 멋진 우의를 만들어 입혀줬다.
점심을 먹고 난 후부터는 바람이 더 거칠어졌다. 바람에 비옷이 부풀어 올라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허리띠로 묶었는데도 어느새 바람에 빠져나온 우의는 펄럭이기 시작했고 안경으로 비가 들이쳐서 우산으로 눈앞을 반 정도 가리며 걸었다.
간절곶 표지석 있는 곳에 도착할 때쯤에는 미친 듯이 불어대는 비바람 때문에 우산을 접어야만 했다. 간절곶 표지석에 몸을 바짝 대고 바람을 피하며 인증 사진을 찍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소망우체통이 보였으나 비바람에 그곳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는 오더라도 제발 바람만이라도 멈추면 좋겠다는 소망이 간절했다.
급하게 사진을 몇 컷 찍자 마자 k가 "갈까?"하더니 표지석 뒤쪽으로 걸어갔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표지석을 돌며 허둥지둥 따라가려는데 갑자기 몸이 철퍼덕 앞으로 꼬꾸라졌다. 무릎이 깨졌으려나, 못 걸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고개를 드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는 k. 그저 앞으로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간다. 둘러봐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멀리 카페에서 누가 보고 있었다면 우스꽝스러운 장면이겠다 싶은 생각에 혼자 벌떡 일어났다. 표지석 주변 바닥 조명등의 덮개가 사라진 그 작은 구멍에 딱 빠진 것이었다.
진하해변을 따라 난 산책로에는 기울어진 가지에 노란색 까만색을 섞어서 머리조심이라고 크게 써붙인 안내문을 둘둘 감아둔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조심하며 걸었는데도 얼굴에 들이치는 비를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소나무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 3시 30분쯤, 드디어 4코스 종점인 진하해변에 도착했다. 종점 스탬프가 있는 가까운 곳의 낡아 보이는 숙소를 잡을 것인가 몇십 미터 떨어진 깔끔한 곳으로 갈 것인가 고민하다 조금 더 걸어가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나는 그만 걷고 싶어서 발걸음이 멈춘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정하자고 말하고도 싶었으나 k의 말을 따랐다. 첫날 해운대에서 묵었던 숙소와 같은 이름이었고 가격은 만원이 더 비쌌다. 저녁 식사 메뉴는 모둠회로 정했다.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던 k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치는 게 보였다. “그거 눈물 아니지?”하면서 티슈를 건더니 “아니, 눈물 맞아”하며 티슈를 받았다. 다정다감하거나 살가운 성격이 못 되는 20년 지기의 대화법이다. 위로해 주고 싶어서 말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쏟여지려 했다. 아니 조금 쏟아졌다. 바로 옆에서 내내 큰소리로 떠들며 식사를 하던 남자 둘이 우리를 보는 게 느껴졌다. “이제, 가자”하며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일어섰다.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나를 목메게 한다. 숙소에 와서 아픈 발을 만지다 자세히 보니 넷째 발가락과 새끼발가락 맞닿는 부분이 짓무르고 있었다. “이것 봐, 내가 집에서 넷째라고 했지? 새끼발가락이 아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넷째 발가락이 아팠던 거였어” 하며 k에게 넷째 발가락을 보여줬다.
한 손에는 우산까지 들고 걸으며 사진을 찍으려니 많이 불편했다. 우의에 핸드폰 주머니가 없어서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고 하다 보니 다른 날에 비해 사진이 적다. 방수팩에 핸드폰을 넣어서 목에 걸고 다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좌) / 점심(중) / 저녁(우)
트랭글 기록 : 21.37km, 6시간 28분, 824kcal, 걸음 수 : 36,076보
날씨 : 흐림, 비(11도~13도)
걸은 날 : 2023년 1월 18일
[해파랑길에서 만난 디카시]
꼿꼿해서는
만들기 어렵다우
서로에게 숙이며
만들어가는 거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