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글에 대한 변명

맨땅에 헤딩하기가 특기인 사람의

by 당근

“너무 잘 쓰려고 하면 시작하기 힘들어"


“그냥 아무거나 떠오르는 대로 일단 써, 쓰다 보면 또 생각이 날 거야 ”


수업 시간에 나의 미래 일기라든가 3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활동을 할 때 시작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던 내가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한 후 이때까지 써온 디카시들을 모두 올려서(미친 듯이) 스토리북(디카시의 맛 1,2,3)을 만들고, 해파랑길 5코스를 걸은 글을 쓰고 나니 갑자기 글쓰기가 망설여졌다.


디카시는 빼기(시도 빼기, 사진도 빼기)에 가깝다면 에세이는 더하기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빼기가 더 어렵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더하기가 더 어렵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드러내는 일인데 나를 어디까지 얼마만큼 드러낼 것인가, 혹시라도 글에 언급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브런치에 새로운 아이디로 다시 작가 신청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얕은 밑천이 드러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디카시 처음 쓸 때도 내가 언제 시가 뭔지 사진을 어떻게 찍는 건지 알고 시작했나,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 머리 들이밀고 시작했지, 디카시처럼 에세이도 쓰다 보면 늘겠지, 다른 분들 글 읽다 보면 또 늘겠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로하는 글, 내 삶을 가꾸는 글, 내 주변의 몇 명만 읽어줘도 좋은 글, 단 몇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글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계획대로 '걷기'를 주제로 인제를 걸으며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욕심부리지 말고 부담도 갖지 말고 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나의 이 육중한 무게를 신체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온전히 감당하는 발이 한 발 한 발 내디뎌서 나온 글이며, 내 생각의 발이 닿은 곳만큼 글로 나온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때 문득 “발로 쓰는 글”이라는 제목이 떠올랐고 매거진 제목으로 붙이고 나니 제법 근사해 보였다. 자신감마저 생겼다. 누군가 나의 허접한 글을 읽고 ‘내가 발로 써도 그거보단 낫겠네’ 하는 마음이 들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 써, 뭐든 써"


"네 발이 가 닿은 만큼, 그 만큼만 써"


오늘도 나는 나를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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