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걷고 쓰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 Jun 18. 2024

계획대로 되면 여행이 무슨 재미

지리산 2박 3일 여행기 2

지리산 종주를 위한 2박 3일은 아니지만, 천왕봉 1박 2일을 위해 전날 전주에서 하루 자는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 2박 3일 여행의 첫날이다.


춘천에서 한 시간 전에 도착한 s를 원주 터미널에서 만났다. 10시에 원주에서 버스를 탔으니 3시간 10분 후 1시 10분에는 전주에 도착해야 했다. 오늘(6월 6일)은 전주의 k집에서 자기로 한 날이고 시간과 체력이 되면 전주 한옥마을이나 연꽃이 유명한 덕진공원도 둘러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현충일인 데다 금요일 샌드위치데이를 재량휴업일로 정한 학교들처럼 휴일로 정한 회사들도 많았는지 차가 막혔다.


익산 지날 때 연락하라던 k에 말에 따라 지도를 캡처해서 카톡으로 보냈더니 '마중 가야겠다'는 카톡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k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이 났다고.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마중 가려고 차에 탔더니 엔진점검에 불이 들어와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마중 나오겠다고 했다.


2시쯤에 전주터미널에 도착했다. k를 태우고 온 카카오택시 기사님은 지리산에 가야 하는데 차가 고장 난 우리 상황을 듣더니 버스로 가는 법, 기차로 가는 법, 렌트로 가는 법 등을 알려 주면서 렌트를 적극 추천하셨다. 서비스센터가 문을 열지 않는 휴일이라 차를 고치기도 쉽지 않았다. k는 야간 낚시를 가기로 한 남편이 낚시를 다녀와서 백무동까지 태워다 주는 방법이 있긴 한데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운전해야 된다고 걱정했다.


밥 먹으면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어떻게든 다 가게 되어 있으니까 일단 밥을 먼저 먹자고 했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궁에서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입구의 해태 석조상을 보니 예전에 전주에 놀러 왔을 때 k가 데려와준 음식점인 게 기억이 났다. 비빔밥을 곱빼기로 먹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버스에서 4시간 시달린 후라 그새 지쳐서 한 그릇 먹기에도 벅찼다.


점심을 먹는 사이 k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엔진점검에 들어온 불은 k가 전날 기름을 넣고 주유구 뚜껑을 꽉 닫지 않아서 들어온 불이었다고.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보니 네 사람의 밥그릇이 모두 깨끗하다. 아주 그릇을 박박 긁어 먹어서 상 치우는 분들이 편하겠다 싶었다(사진을 찍었어야 되는데 나 빼고 셋은 사진 찍는데 관심이 없다).


차가 있었다면 점심을 먹고 전주 시내 어디라도 드라이브를 갔을지 모르나 차가 없었기에 택시를 타고 k의 집으로 바로 갔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k의 남편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끼리 편하게 자라고 일부러 야간 낚시를 가는 게 분명했다. 호들갑을 떨면서 집구경을 했다. 새 아파트라 넓고 깔끔하고 전망도 좋았다. 특히 k가 직접 만든 원목 공간박스를 쌓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재 앞에서 감탄을 쏟아냈다.


k가 참외와 쑥차를 내왔다. 네 사람은 커피를 못(안) 마신다는 것도 닮았다. (b는 아이스라테를 가끔 마시기는 하지만 그건 밤에 잠을 못 자도 되는 날에만 마신다) b는 k, s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러웠다. 버스를 오래 타서 허리도 아프고 피로가 몰려와서 슬그머니 식탁에서 일어나서 소파에 가서 낮잠을 잠깐 잤다.


k가 김치를 볶아서 진공포장기로 포장을 하겠다고 했다. 빌려온 진공포장기라 어떻게 쓰는 건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진공포장기에 네명이 달라붙어서 두끼 먹을 분량 만큼을 포장했다.


k가 우리 짐을 다 꺼내 보라고 했다. b는 다이슨 드라이기를 챙겨와서 우리를 웃겼다(b는 k의 차에다 두고 산에는 절대 안 갖고 갈 거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여분으로 가져온 s의 옷과 우산도 지적을 받았다. 내가 가져온 버너는 이소가스용이 아니라 쓸모가 없었다. 가스면 다 같은 부탄가스인 줄 알았더니 이소가스는 뭔가 다르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배드민턴을 치는 s의 첫째딸이 기념품으로 받은 빨강 요넥스 티셔츠를 나에게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s가 그 티셔츠를 챙겨왔다. 두고두고 사진으로 남게 이 빨강 티셔츠를 내일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은지 4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6시 좀 넘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새로 생긴 대단지 아파트라 음식점이 있는 곳 까지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k는 우리를 두거리우신탕으로 데리고 갔다. 우신전골을 시켜놓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우신탕이라 길래 나는 소의 생식기로 만든 탕인줄 알았다고 했더니 셋이 나를 놀렸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기어이 네이버 사전에서 '우신(牛腎) : 소의 음경'이라는 단어를 찾아서 확인시켜 줬다. 우신전골은 소갈비와 버섯을 넣어 끓인 것으로 소의 음경으로 추정되는 재료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파트 산책로를 돌았다. 단지가 커서 어디가 어딘지, k의 집은 몇 동 몇 호인지 모르겠다 하며 따라서 걸었다. 같은 코스로 두번째 바퀴를 돌려던 저녁 산책은 화장실이 급했던 b덕분에(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끝이났다. 커뮤니티 센터의 화장실을 이용한 후 마트에서 오이, 빵, 소시지, 물, 참치, 사탕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k가 안방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했으나 k 불편할까 봐 거실에서 s와 둘이 자겠다고 했다. b가 서재에서 원주에서 들고 온 다이슨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짐 검사받고 다시 배낭 싸기
매거진의 이전글 지리산 여행을 준비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