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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l 01. 2024

살인 진드기와 로또

진드기 사진 보기 싫은 분은 클릭하지 마세요!!

지난 토요일 낮.

상원사 일출 산행을 다녀와서 씻고 낮잠을 자려는데 발목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하산하다 경사진 곳에서 잔돌에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발목이 삐었나 생각했다. 발목이 부었나 하고 오른쪽 발목을 살펴 보는데 콩알보다 작은 까만 동그라미가 보였다. 벌레에 물려서 나도 모르게 발목을 긁다가 피가 났고, 그 피가 까맣게 굳은 건 줄 알았다. 딱지를 떼듯 검지로 밀었는데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엄지와 검지로 작고 동그랗고 까만 그것을 다리에서 떼냈다. 작고 동그랗고 까만 그것이 주둥이를 내 다리에 꽂고 떨어지지 않으려 용을 쓰는 게 느껴졌다.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이거 살인 진드기 아냐?"


거실에 있던 남편이 방안에 들어왔다. 내가 돌침대에 떨어뜨린 진드기를 보며 말했다.


"응 살인 진드기 맞는 거 같애"


'살인'의 뜻을 알기는 하는 걸까, 내가 호들갑을 떨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동안 남편은 검지 손가락에 진드기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과학 선생님다운 모습. 나의 죽음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그런 남편을 타박할 시간이 없었다. 살인 진드기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치사율 20%, 백신과 치료제 없음, 2~3mm크기이나 흡혈하면 몸이 10mm까지 커짐...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1~2주간의 잠복기를 거치며 오한, 고열, 설사, 구토, 복통, 메스꺼움의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으로 가라는 설명만 잔뜩 있었다. 손으로 진드기를 떼지 말고 병원에 가서 제거 해야 한다는 글도 읽었으나 이미 내가 놀라서 손으로 뗀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도 없었다. 벌레 물렸을 때 바르는 연고가 마침 집에 있어서 연고를 발랐다. 진드기 크기가 작은 걸로봐서 피를 많이 빨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새벽 2시 40분에 집을 나가서 오후 1시쯤 들어왔다. 산에서 7시간가량 있었는데 언제 어디에서 내 몸에 붙었는지 모르겠다. 등산모자, 등산화, 긴바지, 팔토시까지 했는데. 바지 끝에 묻었던 진드기가 바지 안으로 들어가서 등산 양말 끝부분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검지 손가락에 진드기를 얹어서 왔다 갔다 하는 남편에게 진드기 어떻게 했냐고 했더니 아직 그대로 있으며 마당에 놓아 주겠다고 했다. 그 진드기가 다시 우리를 물면 어떡할 거냐고 당장 죽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화장대에서 뭔가로 터트려 죽이는 것 같았다. 피가 조금 나왔다고 했다. 혹시라도 감염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지. 그런 남편에게 내 코가 석자라 잔소리할 시간이 없었다. 살인 진드기 관련 정보를 계속 찾아야만 했다.


딸한테서 영상통화가 왔다. 살인 진드기에 물린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죽으면 좀 억울한데, 그것도 진드기한테 물려서 죽고 싶지는 않은데, 아직 못 가본 산도 많은데, 발목 토시를 하나 사야겠어, 이 주 동안 오한, 고열, 설사, 구토, 복통, 메스꺼움 증세나 나타나는지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진드기에 물려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치고는 너무도 가벼운 말에 딸이 웃었다. 진드기에 물리고도 다시는 산에 안가겠다가 아니라 발목 토시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드냐며 어이없어 했다. 같이 산에 다녀온 b에게도 전화를 했다. 나는 살인 진드기에 물린것 같다, 선생님도 진드기가 어디 붙어왔을지 모르니 잘 살펴보라고 했다. 그냥 진드기이지 살인 진드기는 아닐 거라고 b가 위로했다.


일요일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b에게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산과 숲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분에게 내가 보낸 사진을 보여줬더니 살인 진드기가 아니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의사 선생님도 아닌 산과 숲에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원의 말인데도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살인 진드기에 물릴 확률은 로또 맞을 확률과 같다고, 그러니 살인 진드기에 물렸다면 로또를 사라고 했다. 살인 진드기가 아니길 바라며 로또를 안 사야하나?, 살인 진드기이길 바라며 로또를 사야 하나? 머리가 안 돌아갔다. 무슨 말이냐고, 로또 당첨 되고 살인 진드기에 물려 죽으면 뭐가 좋냐고 말했지만 그 만큼 확률이 낮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위로는 됐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인 진드기 증세가 나타나는지 진득이 살피며 로또나 한 번 사보는 수 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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