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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Jul 23. 2024

나의 요리 선생님

요리는 과학이에요

b가 나에게 해준 요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토마토마리네이드다.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생소한 음식 이름을 외우는데 한참 걸렸다. 마리네이드라는 단어가 입에 붙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마린이 바다, 에이드가 음료, 이 음식을 먹었을 때 바다같이 청량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바다 음료맛이 나는 토마토, 그래서 토마토 마리네이드, 이렇게 외웠었다.  


b는 몇 번이나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요리는 과학이에요"




인제에서 감자를 캔 지지난주 토요일. 감자전을 부친 후 사진을 찍어 원주에 있는 b에게 카톡을 보냈다.


"감자전 먹으러 와"


b가 원주로 가기 전 내가 2층에 살고 b가 4층에 살 때 서로 양쪽 집을 오가며 음식을 나눠 먹었던 게 생각나서 보낸 것이다.


"ㅋㅋ 진짜 비주얼 무슨 일이에요 ㅋㅋㅋ... 맹숭맹숭 감자맛...맛없어 보여요..."


b는 감자를 채 썰어 부침가루로 반죽하여 부쳐낸(식용유를 적게 두르고 반죽에 소금을 넣지 않은) 나의 감자전 맛을 알고 있다.





지난 일요일 밤 11시.


나에게는 한밤중에 해당하는 시간. b에게 전화가 왔다.


"주무세요? 내일 출근도 안 하시는데 벌써부터 주무시냐고요. 제가 내일 선생님 집에 가서 감자전을 만들어 드릴 거예요. 프라이팬이랑 버너도 갖고 갈 거예요"


우리 집에 프라이팬도 있고 버너도 있다고 했는데도 자기 집 스텐프라이팬은 다르다나 어쨌다나. 어쨌거나 알았다고 하고 잤다.




대형 비치백에서 스텐프라이팬, 버너, 단호박, 감자가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b는 단호박은 냉장고에 넣어놓고(나 먹으라고 가져온 듯) 감자를 깎았다. 내가 깎겠다고 했더니 그럼 감자를 갈 강판을 달라고 했다. 강판은 우리 집에 있지. 강판을 꺼내줬다.

강판 합격.


그다음 체반을 달라고 했다. 스텐 체반을 줬더니 감자가 구멍 밑으로 다 빠지겠다며 더 촘촘한 게 없냐고 했다. 체망을 말하는 것 같았다. 체망을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싱크대 아래에 찾아보니 없었다. 없다고 했더니 강판에 감자를 벅벅 밀면서,


"내가 설마 이 집에 체반은 있겠지 싶어서 안 가져왔더니, 우리 집에 있던 체반도 내가 갖고 왔어야 했어"


아쉬운 대로 구멍 큰 체반을 사용하기로 했다.

체반 반합격.


소금을 달라고 했다. 왕소금과 구운 소금이 있는데 어떤 거냐고 물으니 "아,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했다. (말투로 봐서는 기본적인 요리 도구와 재료가 갖춰지지 않은 것에 화난 것 같지만 화난 거 아님) 구운 소금을 줬다.

소금 합격.


식용유를 달라고 했다. '식용유 없을 까봐 아침에 내가 확인도 했었지' 생각하며 식용유를 꺼내는데. 이럴 수가. 식용유가 아니었다. 싱크대 양념선반을 끌어당겼을 때 '올'자가 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올리브유'인 줄 알았다. 꺼내고 보니 '올리고당'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정말, 식용유도 없다니"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걸으면 왕복 50분, 차로는 왕복 8분 거리에 있었다. 내가 가겠다고 했는데도 본인이 갔다 올 테니 나보고 씻고 있으라고 했다.

식용유 불합격.


집에 오기 전에 b가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같이 배드민턴을 치고 왔기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씻고 싶었다. b는 감자전만 만들어 먹고 자기 집에 가서 씻을 거라고 했다. 손님이 와서 음식을 하고 있는데 혼자 씻을 수도 없고 하여 부엌에서 조수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b가 식용유를 사러 간 사이에 후딱 샤워를 했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b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작은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일 나와 통화하는 작은 딸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b가 감자전을 해 주러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딸이 말했다.


"또 왔어?"


나간 지 한참만에 돌아온 b. 편의점 앞 넓은 공터에 차를 댔는데 다른 차가 뒤를 막고 있어서 차를 빼서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스텐 프라이팬이라 기름이 많이 튄다며 야외 테이블에서 부치겠다고 했다. 버너를 꺼내더니 버너 안에 가스가 없다고 했다. '가스? 가스 있어야 될 텐데'. 계단 밑 창고에 가스가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가스 없으면 또 편의점에 갔다 와야 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발장을 열어봤다. 제일 높은 선반에 가스 한 묶음이 있었다. 휴, 다행.

가스 합격.


그 사이 나는 냉면을 만들었다. 이번 여름 방학을 나기 위해 냉면 육수 50개를 냉동실에 쟁여뒀다. 냉면 육수를 이용해서 냉면이나 국수뿐만 아니라 오이나 미역을 넣기만 하면 오이냉국 미역냉국이 된다고 나의 배드민턴 선생님인 a가 가르쳐 준 것이다.


면을 삼아서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은 뒤 냉면 육수를 붓고 그 위에 구운 계란 잘라서 올리면 끝.


인제 로컬푸드점에서 사 온 꼬부라진 오이고추와 낮에 특별히 만든 오이부추무침을 꺼냈다. 오이고추를 찍어 먹을 양념된장을 담고, 감자전을 찍어 먹을 간장 양념장을 만들었다.


냉면 준비는 끝이 났는데 감자전이 들어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냉면 위에 올려 둔 구운 계란 반쪽을 하나 집어 먹었다.


데크에 나가니 습하고 더운 날씨에 감자전 부치는 b 얼굴에서 온면을 말아먹어도 좋을 만큼의 육수가 흐르고 있었다. 감자전 부치다 쓰러지는 사람 생기겠다 싶었다. 작은 감자전을 6개까지 만드는 것을 보고 나서 나머지는 그냥 큰 걸로 한 장 만들어서 끝내자고 사정했다.  




드디어 식사시간.


감자전을 간장에 찍어먹던 b가 말했다.


"간장에 참기름은 왜 넣으셨어요?"


간장에는 참기름 아닌가? 이것도 틀렸나?  


"간장에 참기름 넣는 거 아냐?"


b가 말했다.


"감자전에는 간장에 식초죠"  


간장 양념장 불합격.



감자전이 스텐프라이팬에 해서 그런지 바삭바삭하니 맛있었다. 한창 먹고 있는데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중에는 영월 관사에 사는데 내가 방학이라 집에 와있으니 오는 것이었다. b가 와서 감자전을 만들어줘서 먹고 있다고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또 왔어?" 사실 이틀 전에도 같이 등산 가려고 b가 집에 왔었다.


남편은 '나의 요리 선생님'이  만든 감자전과 '요알못' 아내가 만든 냉면을 흡족해하며 먹었다. 남편이 사 온 치킨까지 후식으로 먹고 b는 집으로 갔다.


다음 주에 모처럼 딸 둘이 원주에 온다. 이 번에는 딸들에게 b에게 배운 감자전을 만들어 줄 생각이다. 스텐프라이팬은 여러 가지로 좋아 보이기는 한데 요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무거워서 안 되겠고 체망은 하나 사둬야겠다. 식용유는 b가 사놓고 갔으니 따로 안 사도 되겠다.


토마토마리네이드는 b가 해준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 1위에서 이제 내려와야 한다. 감자전이 그 자리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참, b는 나보다 나이가 21살 적다는 걸 내가 말했던가?





[감자전 만드는 법]


1. 감자를 강판에 갈아 체망을 이용해 물기를 뺀다.

  이때 나오는 물을 그릇에 모아둔다.

2. 받아놓은 감자물에서 가라앉은 전분을 긁어모아 간감자를 반죽한다.

3. 감자반죽에 소금을 넣는다.

4. 기름을 많이 두르고 고온에서 감자전을 부친다




내가 만든 감자전


b가 만든 감자전


b가 만든 감자전과 내가 만든 냉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마리네이드의 어원

* 마리네이드(영어: marinade)는 식재료를 조리하기 전에 재어 두는 조미한 액체이다. 식초 등 을 넣어 신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 그 단어의 기원은 바닷물의 사용에서 기인한 것으로 고대에는 바닷물로 생선 따위를 절였던 데서 착안할 수 있다. - 출처:위키백과

* marine :  형용사. 바다의, 해양의  
* ade : 명사. 과실의 살과 즙을 섞어 밭은 것. 또는 과즙에 설탕, 꿀 따위를 넣어 맛을 낸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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