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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Aug 20. 2024

남편이 순순히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미련한 부부

지난주, 나는 월요일이 개학이었고 남편은 수요일이 개학이었다. 화요일은 시아버님 기일이었다. 원래는 개학하지 않은 남편이 일요일에 인제로 와서 같이 지내다가 화요일에 나를 태우고 시댁이 있는 서울로 갈 계획이었다.


일요일에 오겠다던 남편은 지금쯤은 출발했나 싶어서 처음 전화했을 때 이제 일어났다고 했다. 두 번째 전화했을 때는 티브이 보면서 쉬고 있다고 했다. 세 번째 전화했을 때 하루 쉬고 월요일에 인제로 오겠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폐막식이 월요일 새벽에 있는데 그걸 보고 오겠다면서. 1.5룸 관사에서 새벽에 자는 사람 깰까 봐 소리 죽여서 티브이를 보는 것보다 혼자 넓은 집에서 마음껏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라고 했다. 남편은 밤늦게까지 티브이 보는 것 좋아하고 나는 초저녁부터 자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니.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 서로 좋으니까. 오면 같이 영화나 보러 갈까 생각했었는데 안 온다고 하니 혼자 실컷 쉬겠다 싶어 좋기도 했다.


월요일, 9시 좀 넘어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인제로 출발한다는 전화인가 하고 받았더니 발을 다쳤다고 했다. 마당의 회양목을 전지 하다가 주차장 쪽으로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삐었다며. 회양목이 있는 마당과 주차장은 무릎 높이 정도의 차이가 있다. 회양목을 전지 하다가 비틀하면서 중심을 잃고 주차장 쪽으로 발을 헛디딘 모양이었다. 인제로 오기로 했으면 그냥 오지 왜 갑자기 회양목을 전지 하려는 마음을 먹은 건지. 다친 발이 하필이면 오른쪽 발목이었다.


속상해서 화가 났지만 표 내지 않았다. 얼른 병원에 가라고 했더니 웬일로 남편이 순순히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 말은 많이 다쳤다는 뜻이었다. 남편은 어지간해서는 병원에 안 가는 사람이다. 내가 최악의 경우까지 들먹이며 겁을 줘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가 병원에 가는 거에 비해 건강보험료를 너무 많이 낸다, 내가 내는 건강 보험료를 다른 사람들이 다 쓴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 말에 병원에 안 가는 게 자랑은 아니라고 미련한 거라고 내가 타박을 해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사람이다.


20년 전 일이다. 나는 원주에 살고 남편은 태백에 살 때였다. 남편이 태백에서 삼척으로 출장 가다가 커브가 심한 길에서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다. 맞은편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서 오는 것을 피하려다 도로 옆 논으로 차가 굴렀다. 도로옆이 논이었기에 망정이지 낭떠러지였다면 맞은편 차와 어쩔 수 없이 부딪혔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사고였다. 사고를 유발한 트럭 운전사가 남편 차가 굴러 떨어진 논 쪽으로 걸어오다 차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보는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뻔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당장은 표시가 안 나도 자동차 사고는 나중에 후유증이 남는다고 병원에 가라고 말했으나 괜찮다며 차만 수리를 맡겼다.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성화에 병원에 가서 검사는 받았다. 타박상만 있을 뿐이며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타박상이라도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강제로 입원시킬 수도 없고 애만 탔다. 차 한쪽 면이 찌그러질 정도인데 사람이 어떻게 괜찮을 수 있나 싶었다. 그러나 입원을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누가 뭐래도 입원을 안 할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후유증 생길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간신히 차를 몰고 도립 의료원에 가니 주차장이 하필 공사 중이라 100미터나 넘게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한쪽 발로 깽깽 뛰어서 병원에 갔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본 의사는 깁스할 정도는 아니라며 처방전만 주더라고 했다. 깁스를 하고 싶으면 의료기기 파는 곳에 가서 발을 고정시키는 뭔가를 사서 끼우라고 했다나. (개인병원에 갔으면 반깁스라도 해줬을 텐데) 그러면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수납하러 원무과에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목발을 짚고 갔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텐데 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는 목발(10년 전쯤 내가 쓰레기 버리러 가다가 계단에서 발을 접질려서 왼쪽 무릎까지 깁스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용한 목발, 목발은 집에 두는 게 아니라며 버리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나는 그런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므로 창고에 고이 모셔둠)이 떠오르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와서 화장실 오가는데도 힘들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계단 아래 창고에 있는 목발이 생각나서 꺼내서 쓰라고 말했다.


화요일에 5교시 수업까지 하고나서 조퇴하고 원주로 갔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남편의 오른쪽 발은 주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땡땡 부은 데다 발목과 발바닥 사이에 길쭉하게 퍼런 멍 자국이 있었다. 멍과 함께 피가 고여있는 것도 보였다. 목발이 소파옆에 세워져 있었다. 목발까지 꺼낸 걸 보내 아프긴 아팠나 보다 생각했다.


인제에서 원주까지 2시간, 서울 시댁까지 왕복 4시간. 하루 6시간 운전은 무리였다. 뒤뚱뒤뚱 걷는 남편에게 운전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운전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운전해서 다녀올 생각이었으나(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수요일에 출근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내가 새벽에 남편을 원주에서 영월까지 태워다 주고 인제로 오는 경우까지 생각 했음) 아무리 생각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갈 때나 올 때, 두 번 중 한 번은 내가 운전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갈 때는 서울에 도착할 때쯤이면 퇴근 시간과 겹칠텐데 차가 얼마나 많이 막힐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또 제사를 지내고 올 때는 너무 졸리고 피곤했다.


남편이 내내 운전을 했다. 제사를 지내고 원주로 내려올 때는 보조석 의자를 아예 뒤로 젖혀서 잤다. 아픈 발로 운전하는 남편에게 미안했으나 차를 오래 타면 꼭 허리가 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원주에 밤 12시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5시에 인제로 출발했다. 전날 6시간에다 다음 날 2시간, 하루 사이에 총8시간 차를 탄 덕분에 허리가 또 아프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서 눕고만 싶었다. 그 정도면 지각을 내고 집에서 좀 쉬지 그랬냐고 b가 말했다. 교직 31년차이지만 나는 아직도 조퇴나 지각을 편하게 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깁스는 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붓고 아프면 하루 정도는 병가를 써도 될 텐데. 남편도 수요일에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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