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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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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Aug 12. 2024

개학 인사

2학기 개학 첫날. 급식판을 들고 일어서서 몸을 돌리는데 언제 와있었는지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빨을 드러낸 oo이가 앞에 서 있다. 1학기 때 수요일, 금요일 방과 후 배드민턴반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들이 배드민턴을 치는 시간에 나와 게임을 몇 번 한 후로 살갑게 구는 아이다. 방학 동안 얼마나 잘 놀았나 얼굴이 더 까매졌다.


"선생님, 몸은 괜찮으세요?"


"응? 나 어디 아팠어?"


허리, 어깨, 다리, 방광... 어디가 아팠을까. 내가 내 몸 어디가 아프다고 얘한테 말한 적이 있었나 식판을 든 채 생각했다.


"여기 여기(배 주위의 튜브를 양손으로 왼쪽 오른쪽 두 번 잡는듯한 포즈를 취하며) 방학 전에 아프시다 했잖아요"


워낙 농담을 잘하는 아이라 튜브를 잡는듯한 포즈를 취할 때 방학 동안 살이 많이 쪘다고 놀리는 말인가 생각했다. (뱃살이 점점 늘어나는 나더러 남편이 미쉐린타이어라고 놀리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그러잖아도 방학 동안 배 주위의 튜브가 더 커져서 살을 좀 빼야지 생각하고 오늘부터 새벽 걷기 운동을 시작한 나. '아 이건 좀 아슬아슬한 농담인데'라고 생각하는데 '아프시다 했잖아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건 농담이 아니구나, 관심이고 진심이구나 싶었다.


"아아, oo아, 너 정말 기억력이 대단하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던걸 그걸 어떻게 기억해?"


"감사합니다"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고는 급식받는 줄로 다시 간다. 개학 인사를 하려고 내가 의자에서 일어설 때 얼른 뒤에 와서 서 있었던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선생님, 오늘도 원주 가세요? 원주 안 가시고 배드민턴 치면 안 돼요?" 하며 친한 척을 했다. 금요일에 그 반 수업이 있는데 금요일이면 원주 가느라 배드민턴을 안치는 나에게 한마디라도 붙여보려고 하는 말이었다. 방학 전에 허리가 아파서 배드민턴을 몇 번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체육관 매니저님에게 내가 아파서 못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었나 보다.


처음에는 나한테만 그러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학교의 모든 선생님께 살갑게 구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 진로실에 와서 뜬금없이 "선생님"하고 불러서 쳐다보면 주머니를 막 뒤지는 척하다가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는 씩 웃고 가는 아이. 어떤 날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어, 어"하더니 겨드랑이 사이에서 손가락 하트를 꺼내 주는 아이. 배드민턴 치느라 아래위 교복이 땀으로 쫄딱 젖은 채로 땡볕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아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땀에 젖은 옷을 벗어놓으며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배드민턴 치고 왔다고 종알종알 수다 떠는 아들이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아이.


누구에게나 밝게 웃으며 먼저 다가가는 oo이의 성격이 부럽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저렇게 밝고 거리낌이 없을까. 저 나이 때 저렇지 못했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14살. 그때 그렇지 못했으니 41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 못하다. 기질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작은 관심이라도 표현하면서, 밝게 웃으며.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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