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천자문

내가 아는 어떤 세탁소

by 당근

이 동네에 이사 오던 첫해 봄,

학교 행정사님 남편이 인제고 앞에서

세탁소를 한다는 말을 듣고

겨울옷을 차에 싣고 찾아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세탁소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지도로 검색을 해봐도

분명 그 자리가 맞는데

2층짜리 가정집이 있을 뿐

세탁소라는 간판도 출입문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간판을 찾지 못해 돌아왔다는 말에

행정사님이 퇴근 후에 선생님 몇 분과 함께 나를

차 한잔 마시자며 세탁소로 초대했다.


비탈에 지어진 집,

앞과 옆에서 봤을 땐 살림집으로 보였는데

경사진 길을 따라 건물 뒤로 갔더니

거짓말처럼 세탁소가 있었다.


1층 건물 옥상에 하얀색 조립식 건물이 얹혀 있었고

공용주차장에서 바로 세탁소로 들어갈 수 있게

나무 데크를 연결해 놓은 것이 보였다.


북향으로 난 유리문에

빨래방임을 나타내는 단어 몇 개와 전화번호가

작은 글씨로 붙어있었다.


행정사님 남편이

과일바구니와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든

조명등을 꺼내오고 차도 내와서

세탁소 앞 데크 위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데

때마침 기룡산에서 기분 좋은 봄바람까지 불어왔다.


그때 그다지 향긋하지 않은 냄새가

우리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는데


이건 무슨 냄새야, 하며

한 선생님이 코를 킁킁거리니

저기 똥차 퇴근했네요 이때쯤 항상 퇴근해요, 하며

똥차를 가리키는 행정사님 얼굴에서

부처님의 미소 같은 것을 보았다.


이야 분위기가 좋으니까 똥냄새도 향기롭다야,


넉살 좋은 한 선생님의 말에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똥냄새를 타고 번져갔다.


간판을 달아야 장사가 더 잘되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간판을 달았던 적도 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라

간판이 날아가서 오가는 학생들 다칠까 봐

아예 간판을 떼버렸으며


단골 장사라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니

간판 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행정사님 얼굴에서

나는 또 부처님의 미소 같은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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