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사진첩에서 낯선 영상이 하나 보인다. 내가 찍은 적이 없는데. 의아해하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땅콩을 입에 넣자마자 탐욕스러운 그녀의 눈은 다음에 먹을 땅콩을 찾고 있다. 곧이어 오른손을 뻗는다. 오른손이 땅콩 하나를 집어 들자 왼손이 마중 나가서 땅콩을 함께 맞잡는다. 양손으로 땅콩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껍질이 맞닿은 부분을 찾는 듯하더니 그 부분을 찾았는지 양손 엄지에 힘을 준다. 껍질이 벌어진다. 벌어진 껍질을 뜯어내며 그 안에 있는 땅콩을 집는다. 그 순간에도 입은 계속 오물오물 쉬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엄지는 땅콩 껍질을 까기에 적당한 정도의 굵기와 넓이를 가졌다. 씹던 땅콩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방금 깐 땅콩 두 알을 오른쪽 어금니 쪽으로 가져간다. 또 씹는다. 오물오물. 그 순간 그녀의 행위는 무념무상에 가까워 보인다. 오직 땅콩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 자기의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허리를 펴고 의자에 앉아서 우아하게 한 알씩 집어 먹을 생각 따위는 아예 없어 보인다. 오로지 땅콩 먹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간밤에 머리를 감고 다 말리지 않은 채로 잤는지 머리카락 몇은 하늘로 부스스하게 뻗어있다. 머리맡에 벗어둔 안경을 집어 쓸 겨를도 없었나 보다. 뭘 먹고 잤는지 작은 눈이 더 부어 보인다. 어젯밤부터 땅콩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어나자마자 눈곱도 안 떼고 땅콩을 저렇게 맛있게 먹을 리가 없다. 내 언제 저렇게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저작 활동을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오물오물 땅콩을 씹는 동안 또 눈은 다음 땅콩을 찾는다. 눈과 코와 귀와 입과 손과 방바닥에 아무렇게 가닿은 발 그리고 구부정한 어깨까지. 모든 신체 기관이 오직 땅콩 까먹기에 집중한 듯 보인다. 땅콩과 싸우기라도 하는 중인지 땅콩을 하나씩 없애는데 쾌감을 느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는 오직 땅콩과 그녀 둘만 존재하는 듯하다. 땅콩 까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 땅콩만 있다면 몇 날이고 며칠이고 그 자세로 땅콩을 까먹고 살겠다는 듯. 그 모습이 영락없는 다람쥐다. 그녀 스스로도 자기의 모습이 다람쥐같이 생각되는지 땅콩을 먹으며 "다람쥐~ 다람쥐~" 중얼거리기도 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그녀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다. 어젯밤에 삶아 놓은 땅콩을 식구들이 잘 먹지 않자 이때다 싶어 혼자서 야무지게 까먹고 있는 그녀는 아주 행복해 보인다. 24초짜리 영상 끝쯤에서 눈뜨자마자 눈앞에서 펼쳐지는 엄마 다람쥐의 삶은 땅콩 먹방쇼를 누워서 감상했을 그녀의 작은 딸 웃음소리가 짧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