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동아리 활동 시간에 야생화 탐구반을 지도하고 있다. 인제에서는 탁구반도 하고 디카시 쓰기 반도 했었는데 올해는 야생화에 관심 있는 아이들과 학교 주변을 산책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개설한 것이다. 물론 동아리 지도 목표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야생화들을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하고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내심 조용한 아이들이 오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랬는데. 아이들은 산책할 때도 세밀화 그릴 때도 조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17명의 1학년 아이들이 신청(배정이 더 정확한 용어일지도)했다. 그것도 남학생들만. 게다가 조용한 아이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학년별로 개설된 동아리 중에서 반별로 한두 명씩 신청하게 하다 보니 어쩌다(어쩌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아이들일지도) 온 아이들이 대부분으로 보였다. 동아리 시간에는 학교 안을 산책하며 태블릿으로 야생화 사진 5개를 찍어와서 검색으로 야생화의 이름을 알아보고 그중 한 가지를 세밀화로 그려서 제출하는 활동을 한다.
세 번째 시간인 어제 7교시. 밖으로 나가서 야생화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더니 지난번에 꽃을 다 찍어서 5개를 더 찍을 것 없다고 한 아이가 말했다. 그 꽃들 말고 그사이에 또 다른 꽃들이 피었으니 찾아보라고 하며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다른 반 동아리 활동하는데 방해되면 안 되니 조용히 다니라는 말과 함께. 뛰지 말라고 했는데도 몇몇은 뛰어갔다. 문 밖을 나서면서부터 쫑알쫑알 대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좋은가 보다. 조용히 걸어 다니기 그게 좀처럼 안 되는 아이들.
"선생님~ 선생님~ 저기 거대 민들레가 있어요~"
남학생 대여섯 명이 모여서 난리다. 영락없는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남학생들 모습이다. 저건 이름이 뭐예요, 하고 여기저기서 묻는다. 민들레 홑씨를 닮긴 했는데 홑씨가 너무 커서 민들레는 아닌 것 같으니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다. 일단 사진을 찍고 진로실로 들어가서 같이 검색해 보자고 하며 나도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홑씨를 뜯어서 날리며 놀았다.
인공폭포 앞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쪽으로 걸어갔다. 인공폭포 앞에 토끼풀이 무성했다.
"선생님, 저 네잎 클로버 찾아주세요"
진로 수업 시간에도 실없는 이야기로 아이들을 웃기는 아이다. 장미꽃을 귀에 꽂으려고 하면서
"이거 제가 꺾은 거 아니에요, 땅에 떨어진 거 oo이가 주워서 제게 준 거예요"
내가 꽃 꺾었다고 뭐라 할까 봐서 선수를 쳤다.
같이 네잎 클로버를 찾아보자며 앉으니 거대 민들레 앞에서 호들갑 떨던 아이들이 다가온다.
"네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세잎 클로버는 행복이잖아, 네잎 클로버 같이 한번 찾아보자"
그랬더니 한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행복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돌려 그 아이 얼굴을 보며 "오~" 하는데 옆에서 또 다른 아이가 말했다.
"그러면 행운을 찾으려고 행복을 밟고 있는 거네요"
"와, 어떻게 그렇게 멋진 말을 해?, 이런 건 적어놔야 돼"
두 아이가 한 말을 출석부에 메모하는 내 모습을 보며 으쓱해하는 귀여운 녀석들.
"오~, 와~"라는 감탄사 다음에 그 아이 이름을 불러줬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아이들 이름을 외워야 하는데 예전만큼 잘 외워지지 않는다. (한 학년에 11개 반이 있는 큰 학교라 5월이 다 지나가는데도 아직 학교 선생님들 이름도 아직 반도 모른다. 학교가 너무 크고 교무실도 분산되어 있는 데다 사무실을 혼자 쓰다 보니 더 그렇다.)
진로실에 들어와서 아이들이 야생화 이름을 검색하는 동안 출석부를 다시 불렀다. 누군가
"선생님, 아까 출석 불렀잖아요"
해서 내가 대답했다.
"응, 너희들 이름 외우려고 다시 부르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들이 갑자기 세밀화를 더 진지하고 열심히 그리는 것 같이 보인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찾아보니 아이들이 거대 민들레라고 부른 꽃은 쇠채아재비였다. 쫑알거리는 아이들 덕분에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쇠채아재비도 알게 되고 아이들 이름을 더 많이 불러줘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