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화분 키우기
화분 키우기에 관한 한 나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나를 거쳐간 화분은 대부분 죽었다.
난.
내가 아는 난은 학교에서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 승진 발령 났을 때 선물로 받는 것이다. 승진과는 거리가 먼 나는 오 년 전에 진로교사로 전과할 때 K로부터 난 화분을 선물 받았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난이라 잘 키우고 싶었다. 애지중지, 들었다 놨다. 그러나 살다 보니 또 바빴고 물 줄 때를 잊어버리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난은 사라지고 사진만 남았다.
안스리움.
인제에서 원주로 들어올 때 K가 또 화분을 보냈다. 사진을 찍어서 검색해 보니 이름이 안스리움이라 했다. 빨간색 잎에서 꽃대도 피어나길래 안스리움은 키우기 쉬운 화분인가 보다 생각하고 가끔 물만 줬다. 그랬는데. 또 어느 날부턴가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1층 응달에 위치한 사무실이 추워서 그런가, 히터를 많이 틀어서 건조해서 그런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들고 왔다. 집에서는 어느 날은 물을 듬뿍 주고 나서 야외 수돗가에 뒀다가, 밤에 너무 추운가 하며 또 어느 날은 집안에 들여놨다가, 또 다음날에는 현관문 앞에 내놨다가. 며칠에 한 번씩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그래도 잎이 계속 시들어갔다. 누런 잎들을 잘라냈다. 지금은 초록잎만 몇 개 남겨져 다소 볼품없는 자태로 현관문 바로 안쪽에 있다. 현관으로 사람이 들락거릴 때마다 환기가 되고 현관의 작은 유리를 통해 빛도 조금 받을 수 있는 그곳이 안스리움에게 최적의 장소이기를.
칼랑코에, 스투키와 하트호야.
인제에 있을 때 플루트 공연을 할 때마다 A가 선물해 준 것이다. A가 화분을 잘 죽이는 나를 위해 그나마 키우기 쉬운 다육이를 선택했다는 것을 안다. 잘 키우고 싶었다. 정말. 칼랑코에는 인제 관사 베란다에서 더위와 추위를 이기고, 갈증과 과습을 이기면서 꽃도 피고 자손도 번창했다. 자손들을 작은 화분으로 옮겨 심고 본 뿌리는 전원주택에 사는 B의 집으로 보냈다. B의 집으로 간 칼랑코에는 그 집 고양이와 강아지들 마냥 살아 초록색 살이 토실토실 오르며 잎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B의 집으로 가지 못한 칼랑코에 자손들은 원주에 이사 와서도 살아남았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는데 칼랑코에를 볼 때마다 저걸 어떻게 살려야 하나 걱정이다. 스투키와 하트 호야도 거의 1년간 잘 키웠다. 그런데 올해 이월에 인제에서 원주로 이사 오면서 힘들었는지 원주집에 와서 한 달도 되지 않아 둘 다 죽어 버렸다. A가 보기 전에 똑같은 것으로 사서 화분에 채워 넣으려고 했는데 어느 날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온 A가 그 화분을 봐 버렸다. 스투키와 하트호야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다시 샀다. 그 둘은 A가 준 것이라 생각하며 키운다.
다육이들.
집 대청소를 하다가 예전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육이들을 키웠던 작은 화분들을 찾았다. 물로 씻으니 깨끗하니 쓸만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나에 천 원짜리 다육이를 10개 샀다. 이 다육이들은 현관 중문 안쪽에 뒀다. 양치질을 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현관 중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육이들을 쳐다봤다. 다육이는 대충 키워도 잘 클 줄 알고 방치했던 나를 반성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매일 보다 보니 다육이가 과습 상태인지 목이 마른 상태인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새끼를 치며 번식하는 것도 보였다. 그렇게 살펴봤는데도 둘은 죽었다. 이번에도 과습 때문인 것 같았다.
고무나무.
교무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책꽂이 위에 놓인 고무나무 화분이 보였다. 보자마자 겁부터 났다. 그전 선생님이 키우던 것 같은데 갖고 가시지 왜 두고 갔을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3월이 지나기도 전에 고무나무는 잎을 하나씩 떨구며 시들어 갔다. 집으로 데리고 왔다. 고무나무는 물을 줘도 햇빛에 내놔도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분갈이가 필요해 보여서 화분을 엎어봤더니 고무나무 뿌리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흙을 다른 것으로 바꿔 채워서 고무나무를 심었는데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고무나무 줄기를 잘라서 물에 담가놓으면 잔뿌리가 생기기도 한다는 글을 읽었다. 10cm 정도의 끝만 남기고 고무나무는 자연으로 돌려보내줬다. 물컵에 짧은 고무나무줄기를 넣어 싱크대 창턱에 두고 싱크대 앞에 설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봤다. 정말로 뿌리가 나오려나. 며칠 후 거짓말처럼 하얀 실 같은 것이 가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가늘고 하얀 뿌리가 손가락 한마디 정도 나왔을 때 화분에 옮겨 심었다. 설마 잎이 날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어쩌면 잎이 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현관 앞 탁자에 올려놓고 오가며 보기를 며칠. 어느 날 가지 끝에서 초록색 새순이 머리를 삐죽 밀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마이너스의 손이 마이더스의 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화분은 과습으로 죽는다고 글을 보고 물 주기를 겁내며 화분이 바짝 마르게 둔다거나, 어떤 때는 얼마나 목이 마를까 싶어서 물을 너무 자주 잔뜩 준다거나 그랬었다. 적당한 햇빛과 물, 영양, 그리고 환기가 필요하다는데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몰라서 전전긍긍, 여전히 그렇게 화분을 키우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은 애정 어린 눈으로 화분을 매일 살펴보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알게 됐다. 그것은 비단 화분의 식물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라는 것도. 나를 거쳐간 화분들이 나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물꽂이로 살려낸 고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