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곡솔바람숲길
운곡솔바람숲길을 작년에 치악산 둘레길 1코스를 걸을 때 알게 됐다. 운곡솔바람숲길은 치악산 자락에 있는 맨발 걷기 코스인데 치악산 둘레길 1코스와 길이 겹쳤다. 운곡솔바람숲길은 원주소풍길 1코스이기도 했다. 작년부터 주변에서 맨발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맨발 걷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치악산 둘레길을 종주한 뒤에 다시 원주 굽이길을 걷느라 맨발 걷기 길을 걸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4월 말에 A와 금요일 퇴근 후에 운곡솔바람숲길을 한 번 걸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잔돌로 인해 따끔따끔 발바닥을 찌르는 느낌이 조금 아픈 듯했지만 걷다 보니 금세 괜찮아졌다. 어릴 때 시골에서 논으로 밭으로 맨발로 돌아다녔던 기억도 새록새록 올라오기도 했다. 땀을 흘리며 목표지점을 향해 빠르게 걷는 둘레길과 굽이길도 좋았지만 발의 감각을 느끼면서 천천히 걷는 맨발 걷기 길도 좋았다. 산길이었지만 황톳길에다 평평하고 넓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일도 없었다.
이 주 전에는 퇴근 후에 영월에서 원주로 오는 남편을 만날 때까지 시간이 비어서 그 시간만큼 혼자서 맨발 걷기를 했다. 소풍길 1코스 스탬프가 위치한 벤치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남편과 만나서 저녁 먹을 시간에 딱 맞았다. 운곡솔바람숲길을 걷고 나서 가까운 곳에 있는 두부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니 맨발로 걷는 일도, 두부를 먹는 일도 내 몸을 위해 정성을 쏟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이 충만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종종 맨발 걷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이 걷겠다고 하면 한번 더 맨발 걷기 길을 걸을 생각도 있었는데 남편은 싫다고 했다. 남편도 등산과 걷기를 가끔 함께 하고는 있지만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난 주말에 모처럼 만에 두 딸이 집에 왔다. 토요일 낮에 원주역에 도착하는 큰애를 마중 갔다가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운곡솔바람숲길로 갔다. 금요일 저녁에 와 있던 작은애가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하길래 맨발 걷기 길 있는데 갈 거냐고 했더니 웬일로 좋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 혼자 혹은 여럿이, 맨발로 또는 신을 신고 걷는 사람들, 걷기를 마치고 수돗가에서 발 씻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혼자 왔을 때도 좋았지만 두 딸과 함께 오니 더 좋았다. 나는 신발을 벗었고 두 딸은 신발을 벗지 않았다. 갑자기 뱀이라도 나타나면 뱀을 걷어치워야 한다면서 입구 큰 나무에 기대 세워진 나무 지팡이를 드는 나를 따라서 두 딸도 지팡이를 들었다.
평지인 줄 알고 따라왔다는 둘째와 산으로 가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슬리퍼를 신고 온 첫째가 지팡이를 짚으며 엉덩이를 뒤로 빼고 느릿느릿 걸었다. 어디까지 갈 거냐고 해서 소풍길 1코스 스탬프가 있는 벤치까지만 갔다 오자고 했다. 왕복 50분. 아무리 운동 부족 이래도 그 정도는 걷겠지 싶었다. 걷기 시작한 지 7분 만에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났다. 이정표에서 숲길 지도를 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못가, 못가, 더 이상 못 가"라고 말했다. 소풍길 스탬프가 있는 벤치까지가 목표였다는 말을 듣더니 "여기도 벤치가 있네" 하며 지도 앞에 있는 벤치에 얼른 가서 앉았다. 벤치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나에게 어필했다.
더 올라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두 딸은 더 걷고 싶어 하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들의 저질체력이 웃겼는지 연신 "아이고 힘들어" 하며 엄살을 부렸다. 토요일 오후 두 딸과의 약 10여 분간의 맨발 걷기 길 산책. 아쉬움이 남았지만(사실 나는 아침에 식구들이 잘 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서 걷기 운동은 이미 충분한 상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두 딸과 함께 맨발 걷기 길에 온 것만으로도 좋았다. 집순이들인 두 딸에게 운곡, 솔, 바람, 숲, 길의 기운이 조금은 스며들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