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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앞에서

by 당근

실내 놀이 공원에 현장체험학습을 왔는데도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현장체험학습일이 다가오자 며칠 전부터 하루 종일 놀이공원 안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걱정이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시끄러운 음악 소리, 비명 소리, 놀이기구 하나라도 타려면 줄은 또 얼마나 진 빠지게 서야 하는지.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난 조용한 게 좋다. 인터넷으로 실내 놀이공원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결론은 '어디에도 조용한 곳은 없다'였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걸을 준비도 하고 책도 한 권 챙겼다.


놀이공원이 가까워지자 버스 안이 들뜨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학생들을 두 줄로 세워서 담임선생님은 앞에서 가고 부담임인 나는 맨 뒤에서 걸었다. 줄 지어 가는데도 사람들이 많아서 신경이 바짝 쓰였다. 입장하자마자 회전목마 앞에서 학생들이 흩어졌다. 버스에서 들어보니 담임교사는 놀이공원에서 혼자 다니는 학생들이 없도록 모둠을 지어 함께 다니게 하고 일정 시간마다 담임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단체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듯했다.


학생들이 모둠별로 흩어지자 교사 단톡방에도 글이 올라왔다. 교감선생님이었다. 인솔교사들 모두 모이라며 카페 사진을 찍어 올리셨다. 교감선생님이 사주신 음료수를 마시며 학년부장 선생님으로부터 교사용 입장권으로 전망대와 아쿠아리움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실내놀이공원에 현장체험학습을 몇 번이나 왔었지만 출입문 밖으로 나가본 적은 없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부담임반 선생님과 또 한 선생님이 전망대와 아쿠아리움에 가 보고 싶다고 하여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다 부담임반 선생님이 신밧드의 모험 하나는 꼭 타보고 싶다는 말을 하길래 혼자 다녀도 괜찮으니 두 분은 신밧드의 모험을 타러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부담임반 선생님이 "그럼 부장님 혼자 식사하셔야 되잖아요"하길래 "혼자 밥 먹는 게 어때서요, 난 괜찮은데" 그러다 엄마뻘 되는 선배교사가 놀이공원에 와서 혼자 밥 먹게 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부담임반 선생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12시쯤 만나서 점심 같이 먹어요" 그러고 헤어졌다.


혼자 전망대도 가고 아쿠아리움도 갔다. 외국인들과 학생들도 종종 보였다. 조용하고 좋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부담임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망대 가는 쪽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에 두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전망대로 가는 출입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두 선생님은 전망대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망대 앞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망대를 둘러보고 내려오던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며 어디 있는 줄 알려주면 찾아오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으니 그럼 그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아쿠아리움에 가면서 봐둔 음식점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교사 단톡방에 혹시 점심식사 못하고 계신 분 있으면 연락 달라는 학년부장 선생님의 글이 보였다. 설마 내가 혼자 점심 못 먹고 있을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석촌 호수로 갔다. 준비해 간 등산모자, 자외선차단 마스크, 쿨토시, 등산용 반장갑을 착용했다. 햇빛이 뜨거웠지만 호수 주변에 우거진 큰 벚나무들이 잎으로 햇빛을 가려주어 걷기 좋았다. 음악소리와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벚나무들이 모두 흡수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회전목마 앞에서 3시에 모이기로 했으니 미리 가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석촌호수를 돌고도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었다. 책도 몇 장 읽었다. 책을 읽다 눈이 시리면 눈을 감고 있기도 하고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호수가를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풍경도 내 마음도 여유로웠다.


2시 30분쯤에 일찌감치 회전목마 앞에 가서 서있었다. 담임 선생님 얼굴이 안보이자 부담임인 내 옆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붙임성 좋은 oo가 말을 걸었다.


"근데 저희 선생님은 어디 가셨어요?"


"오다가 저기 인형가게로 들어가는 거 봤어"


"음악 샘 하고 같이요?"


"응"


"근데 선생님은 누구랑 다니셨어요?"


"나? 혼자 다녔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혼자요?, 진짜 혼자요? 아흥~ 너무 슬프잖아요~"


라고 말하며 나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침에 흩어질 때와 달리 지쳐 보이는 학생들이 꾸역꾸역 회전목마 앞으로 몰려들었고, 회전목마는 사람들을 태우고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고,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학급 단체 사진을 찍는 팀도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놀이공원에 와서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다니는 건 정말 너무 슬픈 일인가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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