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파일럿, 캡틴 트랜스 (3)

회춘?

by 초덕 오리겐

여자의 존재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여자란 존재를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 제1우주군 총사령관 지그문트




003 프롤로그 - 파일럿, 캡틴 트랜스 (3)



다음 날 아침. 나폴레옹 행성의 중심가.


나는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길가에 앉아 있었다. 배에선 천둥소리가 났다. 어제 사원에서 빠져나온 뒤로 한 끼도 먹지 못했다. 나는 눈앞의 작은 무인 카페로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주문하며, 나는 위저드에게 물었다.


"상황은 좀 어때? 그 왓슨인지 뭔지 하는 놈 따돌린 거 맞지?"


-글쎄. 내가 네 생체 ID를 시스템에서 일시적으로 가려놓긴 했는데… 이건 좀 봐두는 게 좋을 거야.


위저드가 카페 벽면에 설치된 대형 홀로그램 TV를 가리켰다. 화면 속에서는 어제 내가 침입했던 사원의 모습과 함께 내 얼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긴급 수배: 전설적인 반역자 '캡틴 트랜스' 나폴레옹 행성 잠입 확인.]

[특별 수사관 제임스 왓슨, "그는 현재 행성 외곽 4구역 근처에 은신 중인 것으로 추정.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 요망."]


"미친… 벌써 찾아냈다고?”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런데 카페 문 옆에 붙은 포스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내 얼굴이었다.


어제 찍힌 스냅샷도 아니고, 제국군 데이터베이스에 있던 가장 선명한 내 사진이 행성 곳곳의 전광판과 벽보에 도배되어 있었다. 20대 전성기 육신의 파일럿 모습 그대로.


참, 나는 반역자가 아니라고. 애초에 제국군 소속도 아닌데?


-트랜스, 왓슨 그놈이 행성 전체의 결제 시스템을 동결시켰어. 지금 네 포인트로 결제하는 순간, 0.1초 만에 좌표가 찍힐 거야.


"뭐? 그럼 이 커피는?"


-방금 내가 가짜 계정으로 우회 결제하긴 했지만, 이것도 5분 이상은 못 버텨. 지금 당장 나가야 해.


그때였다. 카페 주인이 홀로그램 뉴스를 보다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뉴스의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더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 혹시 뉴스에 나오는……."

"잘 마시고 갑니다!"


나는 샌드위치를 움켜쥐고 카페를 박차고 나갔다. 등 뒤에서 카페 주인이 비명을 지르며 경비대에 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 곳곳이 지옥이었다. 골목마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늘에는 내 얼굴을 스캔하며 돌아다니는 수십 대의 감시 드론이 떠 있었다. 위저드가 필사적으로 노드를 조작해 내 위치를 교란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트랜스! 더 이상 시내에선 못 버텨! 왓슨이 행성 전체를 거대한 그물로 만들고 있어!


"알아! 나도 죽을 맛이라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건물 사이의 그늘진 곳으로만 달렸다. 가면이나 변장도 소용없었다. 왓슨은 내 '체격'과 '걸음걸이'의 물리적 데이터까지 시스템에 입력해 둔 상태였다. 신장 180cm대의 성인 남성이라는 조건만으로도 나는 이미 완벽한 타겟이었다.


결국 나는 만신창이가 된 채, 바다 근처 벼랑 밑에 숨겨진 기동 전술기 잔해로 돌아왔다.


반파된 채 반쯤 가라앉아 있는 내 기동 전술기 '이클립스'. 엔진은 죽었고, 내부 시스템은 비상 전력으로만 겨우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눅눅한 기동 전술기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위저드… 이 얼굴로는 빵 하나 못 사 먹겠어. 나폴레옹을 나가기는커녕 카페 근처에도 못 가겠다."


-말했잖아. 그 왓슨이라는 놈, 보통내기가 아냐. 그는 네가 '성인 남성 캡틴 트랜스'로 존재하는 한, 반드시 널 찾아낼 거야.


나는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던 〈쥬부〉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진짜 여자의 미소. 하지만 이 미소를 보기도 전에 제국의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판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내가 나인 걸 아무도 모르게 할 방법."


-방법이 있긴 하지. 하지만 고통이 장난 아닐 텐데?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게 뭔데?"


-회춘.


“회춘?”


-우연인지 때마침 오늘 양성소 우주선 하나가 사고로 폭발했어. 네가 열다섯 정도의 외모로 돌아가고, 내가 죽은 아이의 자리에 네 정보를 덮어씌우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나는 잠깐 흠칫했다. 죽은 아이에 대해 말하는 건데 위저드의 말이 너무 건조했다. 위저드처럼 오래 살면 이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이게 지금 내 유일한 돌파구임은 분명했다.


“……하자. 이대로면 왓슨의 손에 잡히기 전에 굶어죽겠어. 4천 포인트려면 되려나?”


-나도 해본 건데, 육체 나이를 잠깐 멈추거나 1,2년 정도 돌아가는 거랑은 차원이 다를 거야. 뼈마디가 뒤틀리는 고통이 있을 건데, 잘 참아보라고,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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