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군의 사냥꾼 제임스 왓슨
여자의 존재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여자란 존재를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 제1우주군 총사령관 지그문트
002 프롤로그 - 파일럿, 캡틴 트랜스 (2)
사원 앞 광장은 이미 제국군의 장갑차와 중무장한 병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내가 단말기를 손에 넣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뭐야? 경보 시스템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
나는 당혹감을 억누르며 어깨 위의 기계 고양이를 두드렸다.
-나도 당황스러워, 트랜스. 시스템상으로는 아무런 침입 신호도 발생하지 않았어. 이건 기계적인 감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예측'이야.
"예측?"
-누군가 네가 여기 올 걸 미리 계산하고 병력을 배치했다는 소리야. 잠깐만, 지휘관 데이터를 해킹해 볼게.
눈앞의 서치라이트가 나를 향해 좁혀왔다. 그리고 군대의 틈 사이로, 며칠은 못 잔 듯 초췌한 얼굴에 안경을 쓴 사내가 걸어 나왔다.
"드디어 나타나셨군요. 이 사원에서 꼬박 5일을 잠복했습니다."
“여기서 나를 잡으려고 5일을 잠복했다고? 아니, 왜?”
“당신은 존영교도이니까요. 한 번쯤은 호호족의 사원에 올 거라 생각했죠.”
여자주의자와 존영교도는 여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호호족은 여자주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여자를 믿는 사람이라면 호호족의 사원에 올 수도 있겠지.
“여기에 호호족 유적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여기에서 기다렸다고?”
게다가 나는 호호족의 유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원래라면 절대로 올 일이 없었다는 소리다.
“굳이 여기서 기다린 게 아니라, 모든 곳에 다 잠복해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타났단 소리를 듣고 저도 다른 곳에 있다 얼른 온 거고요.”
나는 어깨 위의 기계 고양이를 보았다.
“위저드, 할 말 없어?
-그때는 시스템의 감시가 심해서 입구의 알람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어.
"..."
-그래도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냈다. 이름은 제임스 왓슨. 나폴레옹 행성의 특별 수사관이야. 이 행성에서는 나름 유명한 수사관인가봐. 천라지망을 펼쳐서 초인들을 몇 명 잡아냈대.
초인을 잡았다고? 초인이라면 나와 같이 시스템에 포인트를 투자하여 신체 능력을 비정상적으로 높인 사람을 말한다. 대체로 우주 괴수들과 싸우는 파일럿들이나 제국의 군인들 중에 많았다.
그때 제임스 왓슨이 입을 열었다.
“도주 경로는 이미 차단되었습니다. 캡틴 트랜스, 순순히 투항하십시오.”
“항복은 내 사전엔 없는 단어라서 말이지!”
그러자 제임스 왓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전원, 매뉴얼대로. 저자가 슈트 부스터를 쓰면 즉시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거리를 두고 포위망만 유지해. 섣불리 다가가서 사상자를 내지 마라."
제임스 왓슨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곧바로 슈트의 부스터를 가동했다. 사원의 지붕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지상에서 수십 발의 마취탄과 포획용 그물이 날아들었다. 전부 빗나가긴 했지만.
순식간에 사원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벌써 1,2킬로미터 정도를 날아온 거 같은데, 그런 내 뒤를 따라 붉은색 신호탄이 계속 터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스터를 써서 한참을 더 날았다. 그런데 내 뒤를 따라 도시 곳곳에서 붉은색 신호탄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평소라면 코웃음을 치며 따돌렸겠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꺾으려는 골목, 내가 숨으려는 어두운 지붕 너머마다 이미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위저드! 내 위치 실시간으로 털리고 있는 거 아냐?"
-아니! 내가 계속 네 생체 신호를 가짜 노드 뒤로 숨기고 있어!
“그런데 왜 이러는 건데?”
-시스템상으로는 아무것도 안 잡혀! 저놈들, 무전도 안 쓰고 눈으로 보면서 신호탄을 쏘는 거야. 아날로그 방식이라 해킹으로 도와줄 수가 없어!
내가 하늘을 날면 날수록, 신호탄이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왓슨은 나를 잡으려 하기보다, 내 위치를 온 도시에 알리는 데 집중했다. 부스터를 쓸 때마다 뿜어지는 파란 화염은 밤하늘에서 너무나 선명한 표적이었다. 결국 나는 공중 기동을 포기하고 하수구 근처 골목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젠장, 저 수사관… 진짜 성실하게 사람 괴롭히네!"
나는 필사적으로 골목을 누볐다. 건물 외벽을 타고 넘고, 하수구로 뛰어들었다가 다시 옥상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동 끝에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차가운 총구였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제국의 천라지망인가?
그래도 다행히 나는 가까스로 제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도시 외곽의 숲으로 몸을 던졌다. 위저드가 필사적으로 시스템을 해킹해 주변의 CCTV와 무인 드론들을 먹통으로 만든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