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002 자유시 참변과 존영교

우주력 4220년 12월 24일 오후

by 초덕 오리겐

005 로그 #002 자유시 참변과 존영교


우주력 4220년 12월 24일 오후


제국군 미친놈들 때문에 진짜 기가 막힌다. 이 멍청한 자식들이 우주 로봇 괴수들과 싸우고 있는데 나를 공격했다. 이게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 하면, 같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군과 싸우고 있는데, 일본군을 거의 궤멸시키는 와중에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며 동료인 나를 저격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뭐, 실제로 자유시 참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공산주의를 믿을 수 없다며 극비리에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간 김좌진 장군을 제외한 독립군 부대 연합(대한독립군단)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지.


이로 인해 대한독립군단은 일본군에 저항할 수 있는 민족적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외세의 능력으로 해방을 이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주 독립을 이룩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결국 남과 북으로 분단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역사에 만약이라는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때 자유시 참변만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본군에 대항한 군대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외세의 참견을 받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한독립군단이 자유시에 집결한 궁극적 목적은, 분산돼 있던 독립군 부대들이 힘을 합쳐 단일한 조직 아래 대일항전을 전개하려는 것이었고, 적군(赤軍)을 도와 일본군을 몰아냄으로써 자치를 보장받으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여러 개로 갈라져 있던 민족주의 계열 독립군 10개 부대가 대한독립군단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통합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 원래 독립군에는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단과 공산주의 계열의 한인 무장 세력이 있었는데, 공산주의 계열 한인 무장 세력이 소련의 적군(赤軍)과 함께 기관총, 장갑차, 대포를 포함한 각종 무기로 대한독립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천 명에 가까운 독립군을 포로로 붙잡아, 그들은 머나먼 타국의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이와 비슷한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이다. 공동의 적이었던 우주 로봇 괴수들을 앞에 두고 제국군과 연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국군이 나를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설명하려면 일단 이 세상의 세력 구조를 잠깐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크게 두 개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제국군이라는 이단들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주의자 연합이다. 여자주의자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나는 그 중에서도 존영교도였다.


만약 이 세력 구도를 모른다면 여자주의, 존영교도라는 용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게 뻔한데,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자주의자들은 여자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믿음에는 다양한 믿음이 존재한다. 내가 여자라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여자가 된다고 믿는다거나, 여자란 존재하지만 물질적 실체는 없다고 한다거나, 내가 누군가를 여자로 생각하면 그때부터 그는 여자이니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같은 소리를 하는 놈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여자란 천사나 신, 악마 같은 영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놈들도 있다.


그리고 우리 존영교도처럼 우주 어딘가에 여자가 있음이 분명하니 반드시 여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믿는 광신도들도 존재한다. 그래, 내가 이 광신도 중에 하나다.


존영교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자가 있는 저 우주 너머, 우주 로봇 괴수들이 가로막고 있는 저 너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왜냐면 우주 이쪽에는 여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존영교도라는 이유로 저 쓰레기 같은 제국군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다. 아니, 이 미친놈들이 진짜.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내가 지들한테 욕을 했어, 아니면 공격을 했어. 아니 가만히 있는 존영교도를 왜 건드리냐고. 이런 게 바로 종교 탄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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