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복음 대신 교회 안에 다른 것이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한국 교회의 문제는 <복음>을 잘 모른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라고 명제를 복음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미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은 다 이루었다고 착각하고 산다.
문제는, 이 사람들의 복음이 너무 작아서,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복음이란 달고 오묘하며 깊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통적 기독교에서는 복음을 사도신경과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요약하곤 했다. 즉, 복음에는 사도신경과 십계명, 주기도문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복음을 성경 전체로 확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성경 전체가 복음이기 때문에, 이미 예수 믿고 천국 갈 거라며 자신감에 차 있는 성도들은 사실상 복음을 잘 모른다고 본다.
문제는, 복음이 사라질 때, 복음의 영향이 우리의 삶에 미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복음이 없는 그 자리에는 율법과 공로만 남는다.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비난하고, 서열이나 분파를 만드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끼리끼리 문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듯, 분파를 만들고, 남을 비난하며, 사랑이 없을 때는 복음이 그 안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로, 아래의 두 글을 살펴보자. 바로 아래의 글을 보면, 복음이 없는 곳에서, 자기가 도덕적이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어떤 공동체가 탄생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아래의 글은 복음과 구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정리해 놓았다.
그런데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복음에 대해 설명했을 때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오게 된다.
첫째는, 너무 신학적이라는 거다.
더 알려고 하지 않을 때, 기본적인 내용을 신학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복음이란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실제로 복음을 안다면,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복음을 적용할 삶이 없으면, "그건 너무 신학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복음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둘째는, 너무 율법적이라는 거다.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참 많다. 예를 들어서, 이 사람들의 신앙에 십계명은 폐지된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 설교는 율법주의이기에 비난의 대상이 된다.
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복음은 자신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교회에서 주일성수니 헌금이니 이야기를 듣기 싫은 거다.
셋째는, 너무 은혜라는 거다.
알미니안 쪽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일이다. 그럴 경우, 은혜를 못 받는 것도 자기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은 이중 칭의를 이야기하는데,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은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받아주신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직 의롭지 않기 때문에 의롭지 않은 행위를 하게 되는데, 우리의 의롭지 않은 행위도 의롭다고 여겨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중칭의이다. 즉, 우리가 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중생과 칭의가 나오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를 의롭게 바꿔주시고 고쳐주신다.
결론적으로 복음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우리의 공로와 율법, 행위를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행위와 율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적질하며 지옥을 만드는 사이, 은혜와 복음을 말하는 사람은 공로를 말하지 않기에 천국을 만들게 된다.
참으로 당황스러운 사실은, 목사들 중에도 복음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복음을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수준 정도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을 경우에, 목사들은 더이상 복음에 대해서 설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성도들은 복음을 다 알고 있고, 이미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이루야 할 건 다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음 대신 다른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다.
어떤 교회는 알미니안 믿음과 은혜가 들어온다. 열심히 안 하니 은혜가 식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교회 나오고, 기도하고, 헌금해서 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더 큰 믿음과 은사가 들어온다.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방언도 하고 신유의 은사도 받으라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율법주의가 들어온다. 믿는 사람인데 아직도 성경 지식이 이 정도 수준이고, 통성 기도도 못하냐는 것이다. 수준 미달이라며 지적질이 시작된다.
어떤 교회는 번영신학이 들어온다. 헌금 열심히 하고, 열심히 믿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교회는 심리학이 들어온다.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결국 복음과 은혜가 사라진 곳에는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한 공로와 율법, 행위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나>와 교제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이 이미 하셨고, 그에 대한 감사를 말한다.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다른 자격 없는 사람을 만나도 "이것 밖에 못 하냐"고 비난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