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현재 브런치에 익숙해지는 과정 중에 있다. 네이버 블로그를 쓰던 나는 브런치를 쓰면서 브런치가 많이 불편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일단 오류도 많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아서 글을 쓰고 싶어서 쓸 수 없는 게 요 며칠 동안의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브런치의 시스템이 깔끔하지가 않다. 티스토리와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 뭔가 글이 예쁘게 올라간다. 문단 정렬도 불편하고.. 브런치 개발자는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작성자에게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시스템이다.
아무튼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 포스팅을 시작해보자면, 이번 포스팅은 아담의 아들들 이야기이다. 일단 최대한 창세기의 역사에 맞춰서 이번 시리즈를 써보려고 생각중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한 번 해보기로 하겠다.)
새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시편 19:1-14]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성경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드렸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좀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십계명 1-4계명을 살펴보면 좀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 사실 이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알려주셨던 가르침이기도 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사람이 받고 싶어하는 대접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내가 아무리 좋은 거라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거라면 억지로 줄 수가 없다.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땅콩 알러지 있는 사람에게 빵에 땅콩 잼을 듬뿍 발라주는 건 친절이 아니라 공격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줘야 한다.
우리가 아벨의 제사과 가인의 제사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다. 어떤 부분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고, 어떤 부분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는 거다. 즉,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받으실까? 내 마음대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가 아닌, 내 마음대로 드리는 예배는 제2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즉, 우상 숭배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즐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며 EDM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예배는 그냥 내 마음대로 드리는 예배이다. 부모님 생일이랍시고 내가 원하는 음식, 내가 원하는 선물을 사온 다음에 "내가 기뻐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꼴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제멋대로 예배를 드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제멋대로 예배를 드리는 게 깨어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사람은 친구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자기가 본 영화표를 한 장 가져와서 "고마워, 네 생일이라고 영화를 잘 봤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리고는 "나 깨어 있는 사람이지?"라고 생각하는 꼴이다. 이건 깨어 있는 게 아니라 개념이 없는 거다.
예배를 마음대로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예배 시간에 비빔밥을 비벼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이런 건 예배가 될 수 없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경건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예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면 하나님을 알려주는 두 개의 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는 자연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다.
물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좀더 명료하게 적혀져 있는 책은 바로 성경이다. 자연을 보고서는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 중에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지 기도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즉, 예배 방법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성경에 나와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예배이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자세가 있다. 첫째로, 성경에 있는 것만 예배에 사용해야 한다는 자세이다. 둘째로, 성경이 금하지 않으면 모든지 다 쓸 수 있다는 자세이다.
두 가지 자세 모두 장단이 있다. 한쪽은 율법주의가 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내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한 예배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 극단의 사이에서 중용을 잘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성경에 있는 것만 사용하는 게 안전하기는 하다. 신학적 문제가 생긴다면, "성경에 없는 건데 굳이 해야 하는 거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도대체 이건 왜 굳이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예배는 지양해야 한다.
반면에, 성경에 있는 것만 예배에 사용하면 어떨까? 사실 웬만한 예배 요소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 아래에 새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예배 요소라면.. 위기감을 가지고 바라봐도 괜찮을 정도이다. 물론 "드럼을 쓴 적이 없지 않느냐" 같은 소리는 무시해도 된다. 시편에 보면 "모든 악기로 찬양하라"라고 되어 있으니 말이다.)
1.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책은 무엇인가요?
2. 우리는 어떻게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왜 성경이 중요할까요?
3.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할 때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