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막간극 ②] 행정의 파수꾼 낮은선율

“낮은 곳에서 흐르는 선율처럼” (섬김의 원칙)

by 초덕 오리겐

1.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율되는 질서


기문나모의 엔진룸에서 '낮은선율'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안정감'을 상징했다. 만약 오리에탈이 거대한 건축물의 설계도를 그리는 이였다면, 낮은선율은 그 건물의 배관을 연결하고 매일 아침 복도를 닦으며 입구의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 실무자였다.


그에게 '관리자'라는 직분은 권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먼저 화살을 맞아야 하는 '방패'였고, 가장 나중에 잠들어야 하는 '파수꾼'의 고독한 자리였다. 그는 개혁주의 신학이 가르치는 '직분(Office)의 비하'를 온라인 공간에서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그에게 행정이란 단순히 규칙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한 소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주변의 불협화음을 제거하는 '거룩한 청소'였다.




2. “낮은선율”이라는 닉네임에 담긴 자기 부인


그는 왜 스스로를 '낮은' 선율이라 불렀을까. 오케스트라에서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고음의 바이올린이나 웅장한 금관악기다. 하지만 그 화려함을 지탱하는 것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박자를 짚어주는 베이스와 첼로의 저음이다.


낮은선율은 엔진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오리에탈의 설계 철학을 깊이 존중했으며, 자신의 판단이 공동체의 질서보다 앞서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검열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운영자들은 종종 '통제권'이라는 달콤한 권력에 취하기 쉽다. 누군가의 글을 지우고, 누군가를 추방하는 권한은 자칫 자신이 심판주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은선율은 그럴 때마다 자신의 전적 부패함을 떠올렸다. “나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다.” 이 철저한 개혁주의적 자각이 그를 '군림하는 관리자'가 아닌 '섬기는 형제'로 머물게 했다. 그의 행정은 결코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상처 입은 양들이 부딪히지 않도록 울타리에 감아둔 부드러운 완충제와 같았다.




3. 왼뺨과 오른뺨의 신학: 비난을 소화하는 법


기문나모가 성장할수록 운영진을 향한 공격도 거세졌다. "너희가 뭔데 치리하느냐", "율법주의자들이다", "감투놀이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질 때, 가장 전면에 서서 그 화살을 맞은 이가 바로 낮은선율이었다. 그때 그가 임원방에 남긴 유명한 어록이 있다.


11/22/23 18:51, 낮은선율 : 왼뺨 오른쨤코스로 부탁드립니다


이 말은 단순한 재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 39절(“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순종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받는 비난을 '억울한 피해'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세금'처럼 여겼다.


그는 비판자들을 향해 맞서 싸우기보다, 그들의 거친 언어를 유머로 받아치며 갈등의 온도를 낮췄다. 그가 보여준 여유는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신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비난의 파도가 칠 때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서핑을 즐기는 서퍼처럼, 고통스러운 행정 업무를 즐거운 헌신으로 승화시켰다.




4. 규칙(Law) 속에 숨겨진 복음(Gospel)의 마음


낮은선율에게 가장 큰 고민은 '규칙'과 '긍휼' 사이의 딜레마였다. 방의 가이드를 어긴 사람을 강퇴할 때, 그의 손가락은 늘 망설였다. 규칙대로라면 즉시 처리해야 하지만, 그 닉네임 뒤에 숨겨진 한 영혼의 갈급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행정 매뉴얼을 집행하면서도 늘 '예외'가 아닌 '인격'을 살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거친 말을 뱉었을까? 혹시 오늘 삶의 자리에서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닐까?” 그는 규칙을 집행하기 전, 조용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파수꾼이었다. 그의 행정은 '가려내기' 위한 행정이 아니라 '살려내기' 위한 행정이었다. 그는 규칙이라는 엄격한 그릇 안에 복음이라는 부드러운 양식을 담아 지체들에게 전달했다.


그가 정비한 기문나모의 시스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해졌지만, 그 정교함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였다. '지체들이 오직 그리스도께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는 자신이 잊혀지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낮은선율 참 일 잘하네"라고 말하기보다, "이 방에 오니 참 평안하고 말씀이 잘 들리네"라고 말하기를 원했다.




5. 낮은 선율은 계속 흐른다


낮은선율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엔진을 점검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지 않지만, 그가 묵묵히 짚어주는 베이스 음이 있기에 기문나모라는 공동체는 흔들림 없이 진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는 개혁주의자의 자부심을 '높아짐'이 아닌 '낮아짐'에서 찾았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 결국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살리듯, 그의 낮은 섬김은 0과 1로 이루어진 이 삭막한 광장을 은혜의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선율은 멈추지 않는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그는 기꺼이 왼뺨과 오른뺨을 내어주며 이 거룩한 행정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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