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면
6:14-20
욥은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해 친구가 되어서 동정도 못하냐고 따진다.
6:21-23
욥은 친구들에게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욥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6:24-26
욥은 친구들이 잘못된 책망, 허수아비 논법을 펼친다고 말한다.
6:27-30
결국 친구들의 위로가 위로답지 않는다며 친구들을 거절한다.
6:14-20
신앙을 잃어버리더라도 친구라면 동정한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같은 신앙임인에도 참된 위로를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신앙을 잃은 친구라도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있는가? 최소한 그 친구에 대한 동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2) 충고랍시고 같은 신앙인에게 신랄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과연 바른 자세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치 욥의 친구들과 같기 때문이다.
6:21-23
욥이 돈을 달라거나 사업을 도와달라는 것처럼 무엇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욥의 친구들은 욥을 제대로 위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욥의 친구들이 가진 방어기제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미니안의 해독소를 발견한다.
욥의 친구들은 의인 욥의 고난을 통해서 두려운 것을 발견했다. 내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고, 내 힘으로 부유함과 건강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이다. 즉, 욥의 고난을 보니 제사(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께 제물(헌금)을 잘 바치면 부유해질 것이라는 번영신학과 기복주의 신앙이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욥에게 극단적으로 반응한다. 고난을 겪고 있다면 죄가 있을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6:24-26
욥은 의인이나 욥의 친구들은 허수아비 논법으로 욥이 죄인이라며 욥을 치고 있다. 근거가 없고 틀린 말이라 바람에 날리는 헛된 말처럼 없어지는 말이라는 것이다.
6:27
의인의 고난을 보여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욥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예수님 또한 제자 유다에 의해 팔리셨다.
6:28-30
친구들의 위로가 적절하지 못하여 욥은 친구들을 거절한다.
다음의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신앙을 잃은 친구와 고난에 빠진 신앙인 친구. 우리는 이러한 친구들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1) 신앙을 잃은 친구에게 동정할 수 있어야 한다. 2) 고난에 빠진 신앙인 친구에게 바른 위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주의해야 한다. 특히나 누군가를 비난할 때는 허수아비 논법을 펼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잘못된 신앙을 수호하고자 방어 기제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잘못된 신앙 습관을 굳건히 붙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방어 기제가 되어 다른 지체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교회를 잘 몰라서 생긴 상처(트라우마)가 있다. 이것이 견고한 진과 쓴뿌리가 되어 공동체 지체들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잘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