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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저주로 작용할 때

복이 저주가 되지 않도록

by 닥그라

Intro


책을 좋아하다 보면,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 넘어지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듣게 된다. 물론, 태어나면서 부터 주어진 재능이나 재산 때문에 오히려 자멸하게 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왜 복이 저주로 작용할 때가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이 저주로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사실 그 사람의 인격을 알려면 성공을 주거나 돈을 주라고 하지 않던가. 그 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에게 권력과 돈이 많아질 때 드러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을 누릴 때 주의해야 한다.




부유함


먼저 출애굽기를 보면, 종이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가난한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황금 송아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있었을까? 그 사실은 열 가지 재앙이 끝난 직후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12:35-36]


하나님께서 미리 예고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고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는 대로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얻게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에 대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지고 악을 행했던 것이다.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32:1-6]




권력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성경을 알아가면서 충격을 받는 본문이 하나가 있다. 바로, 밧세바 사건이다. 아니, 그렇게 영웅시했던 다윗이 알고 보니 강음을 행했던 남자라니? 기독교인이라면 이 본문에서 한 번씩 충격을 받는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다윗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일까? 전쟁에 앞아서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군대를 이끌던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변한다. 부하들에게 군대를 맡기고 자기는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 직후에 다윗은 한 여자를 보고 간음을 저지르게 된다.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삼하11:1-5]


간음을 저지른 다윗은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직한 신하인 우리야를 죽이게 된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조급한 마음에 살인 교사를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왕이 되게 하시고, 왕의 권력을 주시자 다윗은 이것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왕이 되어 해이해진 마음데 왕의 권력으로 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왕위가 복으로 작용하지 않고 저주로 작용하고 만 것이다.




육체적 힘


육체적 힘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삼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육체적 힘만 주신 게 아니라 지혜도 주셨지만, 오늘은 육체적 힘만 다루도록 하자.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삿14:5-6]


삼손은 사자를 찍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으로 자만에 빠진 삼손이 한 짓이라고는 동네 양아치 짓과 대동소이했다. 읽다가 삼손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자기 힘을 믿은 삼손이 불량한 행동을 보인다.


이건 삼손이 아니라 중학교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육체적으로 건장한 아이들이 교실 분위기를 망가트리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보면, 육체적 강건함이라는 복이 그들의 인생에는 저주로 작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지혜


지혜를 말하자면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왕은 성경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래의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지혜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도 많았다고 한다.


22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의 모든 왕들보다 큰지라 23 천하의 열왕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24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 [대하9:22-24]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로움을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성도 중에 솔로몬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분명, 아래의 말씀은 교회에서 무수히 많이 설교되는 본문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솔로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도들 보기에 솔로몬은 결국 실패한 왕이며 배도한 왕이기 때문이다.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왕상3:11-13]


하나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주셨으나, 그 지혜를 가지고 오히려 잘못된 길로 나가는 솔로몬을 보며 의아함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지혜로 이스라엘을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고, 배도의 길로 빠지게 만들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명망


다윗에 이어 나를 충격에 빠트렸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기드온이다. 기드온은 겁이 많아 보일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명망을 얻고 나자 아내를 많이 두게 된다. 그로 인해 아들이 칠십 명이었다고 기록한다.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삿8:29-32]


그렇다면 이것이 복이었을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하루 아침에 기드온의 자식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즉, 기드온에게 있어 사회적 명망은 저주로 작용한 것이다. 아내를 많이 두는 죄를 저지르게 했을 뿐더러 (신학적으로 이것은 사사기에서 점진적 타락을 보여준다), 결국에는 자식들을 서로 죽게 만드는 끔직할 결말로 이끈다.




선악과와 놋뱀


많은 사람들이 선악과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어떻게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었겠느냐고 묻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사실 선악과는 아담을 타락시키기 위해 주어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선악과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관계를 위한 것이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선악과 단 하나였다. 즉, 선악과를 볼 때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권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즉, 선악과의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선악과가 타락의 단초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놋뱀이다. 원래 민수기에서 놋뱀은 구원의 도구였다. 놋뱀을 본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았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는 장치였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21:9]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다보면, 어처구니가 없게도 이 놋뱀이 우상숭배의 도구가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을 기억하라고 남겨두신 선물을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로 사용했던 것이다.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18:3-4]


그래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에서는 이 사건을 본받아서 십자가를 본당 내에 설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본당에 앉아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우상처럼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끊어지지 않는 그물처럼


나는 위의 말씀들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저주가 되었을까"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상황에 대해 분석한다면 훨씬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우리는 끊어지지 않는 그물에 대해 볼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복이 넘쳐서 그물이 끊어질 지경인데, 이게 끊어지지 않는단 거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21:11]


여기서 그물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그물이 끊어진다는 것은,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들이 복이 아니라 저주였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저 많은 물고기가 그물을 끊어 버렸으면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비싼 그물 또한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로 구해야 하는 것은 끊어지지 않는 그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이 복이 저주가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달라는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오히려 더 겸손함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P.S.


여기서 한 가지 덧붙여야 할 이야기가 있다. 성경은 왜 존경받는 위인들의 실수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낼 것인가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성경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근대에 나온 위인전조차도 위인의 공만 이야기하고 과(실수)는 감춘다. 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프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거 없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었어도 잘못을 감추지 않고 보여준다. 이것 때문에 성경을 신뢰하게 된 사람들이 참 많다.


또 하나는, 우리 모두는 연약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드온이나 다윗 같은 사람도 넘어지고 실패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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