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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베껴도 되는가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전하지 않는 사람?

by 닥그라

Intro


목사가 남의 설교를 베껴도 될까? 우리는 목사가 남의 설교를 베낀단 사실을 놓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할 때가 있다. 저걸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떤 설교를 듣고 싶은 것일까?


물론 여기서 내 주장은 "남의 설교를 그대로 읽어라"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설교를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사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설교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운대로 안 가르치는 게 문제이지, 배운 대로 가르치는 걸 문제 삼는 건 안 된다는 거다.


특히나 로마서로 유명한 목사들 설교를 들어보면 우리는 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의 설교를 조금만 분석해보아도, 건전하다고 알려진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해석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읽은 건 아니다. 소화한 뒤 자기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그런즉 이제는"이라는 개념 같은 것은 그대로 차용된다.)


물론, 남의 설교문을 그대로 읽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성도들이, "그건 나도 하겠다"라고 반응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남의 설교를 그대로 읽는 걸 문제 삼는다고 해서, 설교를 베끼는 것(차용)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베끼는 것"의 정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설교를 해보았다면, 남의 설교를 그대로 읽는 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애당초 남의 설교를 그대로 읽는 건 이 논의의 맥락에선 제외한다.)




새로운 학설과 진리?


일단 설교의 목적부터 이해해보자. 목사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학설과 진리를 찾고 자랑하는 게 목적이라 생각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주장을 설교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그냥 이단에 불과하다.


설교의 목적은,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잘 가르치는 것"에 있다. 이것을 잘 설명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을 가져다가 쓰면 된다.




인용하기


물론, 이때 문제는 내가 가져다 쓴 이 말을 어떻게 인용하는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해놓고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전혀 틀렸다. 설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생각할 법한 발상이다. 설교를 논문으로 아는가?


먼저, 설교란,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내 해석, 내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알 만한 것, 또는 모두가 알아야 하는 해석을 가르치는 것에 훨씬 가깝다. 이때, 지금 설교하고 있는 이 해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권위자를 인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설교란 말하기이다. 설교를 논문처럼 생각해서 "어디를 인용한 것인지" 덕지덕지 이야기를 한다면, 그만큼 설교를 지루하고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없다. 나의 경우만 해도, 최대한 인용을 많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편인데, 성도들의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언급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어거스틴과 칼빈의 예


신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만한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엘리야의 선지 학교이다. 선지자에게도 생도들이 있었다.


초대교회 때도 비슷한 곳이 있었다. 바로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의 주도에 의해 훈련된 목사들이 아프리카 전 지역으로 퍼져서 커다란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종교개혁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종교개혁 시대의 많은 유명한 목사들이 칼빈의 제자들이었다. 칼빈에게 배운 사람들이 전 유럽으로 흩어져서 칼빈의 가르침을 그대로, 그러나 각 상황과 지역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칼빈에게 배운 사람들이 그 가르침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는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일, 영국 등지만 해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전해도


오늘날의 목사들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항상 생각하는 것인데,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전해도 한국 교회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가르쳐도 ("하나님 죽어"나 "성경만 읽으면 되지 신학은 쓸모없다" 같은) 헛소리는 하지 않았겠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들어보면, 생각보다 그 깊이가 깊다.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튼튼하고 건강하다. 다만, 일부 목사들이 그 가르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거다.




정리하며


누군가가 나에게 "남의 설교 베껴도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베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특히나 전도사와 같은 사역 초년생의 경우에는 건전하고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베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기독교는 새로운 학설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성경으로, 초대교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류, 정통을 잘 배워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물론, 청중의 상황과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읽는다면 오히려 본문의 의도를 왜곡하게 될 수도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조차 새로운 교회를 시무하게 되었을 때 설교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람의 설교를 베낀다 하더라도 청중을 위한 창조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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