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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주냐

by 닥그라

Intro


나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의리 문화"에 빠져 있는 친구를 보면서 황당함을 겪은 적이 있다. 이 친구가 말하기를 "나도 내가 억지 부리는 거 알아. 그런데 친구잖아. 친군데 이것도 못해주냐?"라고 한 거다.


친구끼리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된 관계가 깨어지게 된 이유를 친구끼리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이 말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스라이팅이거나, 억지이거나, 가해해자들의 가해 말습관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균형을 갑과 을로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주냐"는 거다. 못해준다고 하면 이 관계를 다시 재고한다느니, 쫌생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상 이걸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참고로, 이 말에 대해서는 벌써 수 년 전에 이미 넷상에서 거의 정리가 끝난 말이다.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주냐"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오래된 관계라도 그 관계를 끊으라는 소리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래와 같이 이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 아래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프레임 씌우기


내가 이 친구와 대화를 하며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프레임 씌우기였다. 결국 자기가 말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그래서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주냐"는 거였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지능의 문제이다.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에는 두뇌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억지를 부리는 것이 바로 "내 부탁 때문에 니가 곤란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주냐"고 하는 거다.


나는 이 말에서 "억지 부리는 게 친구한테 할 일이냐"고 따졌다. 그러니까 "지금 니가 억지 부리는 거 알지? 이거 자체가 친구끼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라고 말했던 거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는데, 그래서 친구끼린데 이것도 못해주는 거야?"라고 나와버렸다. 다시 말해, 이 친구의 프레임 안에는 "소중한 친구라면 억지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였다. (뭐,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가 말에서 질 테니까 계속 억지를 부리려면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프레임을 억지로 들이미는 게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억지 부리는 거 아는데, 그래서 친구한테 이것도 못해주냐"는 거였다. 이것은 사실상 오늘날 정치에서 보이는 진영 논리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입장은 무시하고 내 입장만 논리적이라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논리 오류"를 펼치는 것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모른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강제로 요구하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강도에 일진이나 하는 일이다. 자기 똘마니에게나 강제로 요구를 하는 거지, 친구라면 상대방이 곤란한 걸 아는데 그렇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받는 걸 자주 하는 편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돕기도 많이 도왔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곤란해하다면 억지로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주는 입장에서 “친구니까“는 가능하지만 받는 입장에서 ”친구니까“는 친구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 다시 말해 친구의 희생을 강제로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니까 당연히 해줄 거라 생각하고 답정너로 정해놓는 건 친구에 대한 배려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내 생각만 하는데 친구라면 이럴 수가 없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친구를 자기 중심적으로 사귀는 것이고 친구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이 사람은 감사가 없는 사람이다. "친구니까 이것도 못해주냐"는 말에서, 친구가 자기 요구를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들어 있는 거다. 외국에서도 "친구 좋은 게 뭐야 what friends are for"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받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친구가 도와줬다고 해보자. 도와준 친구가 "친구 좋은 게 뭐야"라고 말한다면, 받는 사람은 그 말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받는 사람이, "친구 좋은 게 뭐야, 천만 원만 줘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친구의 도움이, 친구의 무료 봉사가 당연한 것이 되는 거다.




가족도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계속 회자되었던 것이 연예인 가족 등에 빨대를 꽂았던 파렴치한 가족들이다. 자기 가족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킨 경우도 허다하다. 사업한다면서 수없이 망한 뒤, 가족이니까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며 들러붙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족의 도움을 당연히 여길 때 사람들은 그것을 빈대와 흡혈귀처럼 여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빈대 같이 들러붙는 가족 때문에 결혼 같은 건 애당초 포기하고 꼬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는 가족조차도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던 거다. 상대방이 들어줄 수 없는 억지 요구를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거다. (물론, 가족이니까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인데 이것도 못해줘"라는 것은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로 보여주는 거다.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하기는 커녕, 내가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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