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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Sep 15. 2018

빌어먹을 캣콜링

외지인의 도시 산힐, 만국 공통 남자들의 인사법


성희롱입니다


액티비티의 천국이라는 산힐에서 우리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레포츠를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그저 패러 글라이딩 한 번이면 이곳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서 패러 글라이딩을 예약하면서, 산힐에서의 마지막 밤은 일찍 잠드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일 오전 8시 30분까지 사무실로 모여야 했기 때문이다. 놀 기회가 생기면 패러 글라이딩이고 뭐고 금방 잊고, 일단 마시고 볼 것이 분명하기에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특히 그날은 우리만의 생일 파티가 필요한 날이었고, 맥주 한 잔에 길고 긴 수다면 충분한 밤이었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싫었다. 동양인 여자 셋에게 쏟아지는 지대한 관심이 못내 피곤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인지도 관심도 없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정도를 모르는 이들 역시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무례하고 불쾌한 오지랖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결국 패러 글라이딩을 예약했던 가게로 가 근처에 술을 마시러 갈만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의 예약을 도와주었던 직원이 이번에도 도움을 주겠다 나섰다. 그녀는 주변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이곳들이 최고라며 세 개의 가게 이름이 적힌 작은 종이를 건넸다.


“조심해야 해, 정말로 조심해야 해. 이런 말 하니까 내가 너무 엄마 같고 이상하지만 진짜로 조심해야 해. 밖에 남자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다들 말 걸고 싶어 할 거야. 진짜 조심해야 해!”


앳된 얼굴로 연신 “비 케어풀!”을 외치던 직원이 고맙고 귀여워 장난스레 야무진 표정을 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음하는 것도 낯선, 종이에 적힌 디스코텍들은 모두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하는 곳은 늘 깊은 고민 없이 선택에서 제외되고는 했다. 어쩌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게 될 때면 요금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지 괜히 미터기만 뚫어져라 쳐다보게 되는, 말도 통하지 않아 문제가 생겨도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굳이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다. 서울에서도 늦은 밤 택시를 타고 나가,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곳에는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여러 불쾌하고 위험한 사건이, 절대 과장이나 오해로 치부할 수 없는 그것들이 원인이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편리하게 척척 잡아탈 수 있는 그 교통수단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일종의 모험이 되었다. 



아쉬움이 남아 고기 꼬치 하나와 맥주 한 컵을 사들고 비교적 한갓진 광장 구석에 위치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조촐하지만 아늑한 우리만의 생일 파티     


직원의 말마따나 어디를 가도 남자들이 너무도 많았고, 칭찬을 가장한 조롱에도, 관심을 방패 삼은 희롱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에 지쳐 가고 있었다. 당신의 그 인사, 그 호의, 그 관심, 그리고 그 말, 모두 성희롱이라는 걸 모르는 것인지, 모르고 싶은 것인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면하고 침묵하고 고민하고 애쓰는 것은 왜 언제나 우리여야 하는 것인지, 혹은 우리를 포함한 많은 여자이어야 하는 것인지. 



톡 쏘아 붙이고 오지 못해 분하고 속상한 마음을 쓴 웃음으로 대신하는 것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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