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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Aug 27. 2020

간간히 이어지는 응원

DAY 2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지 않나. 왠지 모르게 가끔씩 생각나는 사람. 친할 수도 친하지 않을 수도, 오래된 인연일 수도 겨우 몇 주 전에 알게 된 인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조건들을 뛰어넘어 아무 이유 없이 떠오르는 사람.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몇 있다. 


하나는 대학시절 만난 같은 과 친구다. 지금 내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은 '벌꿀'. 지루하고 지난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모 전 대통령이 한 대학에서 "바쁜 벌꿀은 잠들 시간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고 우리도 바쁜 벌꿀처럼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며 서로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벌꿀이와 내가 처음 말을 섞은 건 아마도 대학 3학년, 우연히 같은 교양 수업에서였을 거다. 일본문화연구라는 과목이었다. 같은 과 동기들과 함께 그 수업을 신청한 벌꿀이와 달리, 나는 홀로 그 수업에 참여했었다. 그 시절 나는 좋게 말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시간표 구성을 추구했었기에 대부분 홀로 강의실에 들어서곤 했는데, 혼자 듣는 수업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래도 누군가와 함께 듣는 것이 즐겁긴 했나 보다. 개강날 강의실 문 앞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으러 둘러보다 동기들을 발견했을 때 괜스레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서먹하고 약간은 거리감 있는 첫 만남 이후 우리는 다음 학기에도 우연히 같은 전공 과목을 들었다. 교양 수업에서와 달리, 첫날 서로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레 같이 앉을만큼 우리는 조금 친해져 있었고, 중간고사나 어마어마한 과제를 할 때 가끔씩 어려움을 토로하며 연락을 이어갔었다.


그리고 그 수업 이후로 벌꿀이와 내가 함께한 활동은 딱히 없다. 같은 수업을 듣지도, 같은 동아리를 하지도, 같이 졸업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얇고도 길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부담 없는 연락 덕분이다. 벌꿀이가 1년정도 중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도 우리는 종종 문자나 전화로 일상을 공유했고, 한국에 있던 내게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문득 찾아오던 벌꿀이의 연락은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창구가 되곤 했다. 그렇게 가끔씩 또 우연히,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의 약점을 공유하면서 인연이 이어져왔다.


어제와 오늘처럼, 아마 내일도 모레도 벌꿀이와 나는 문자도 전화도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문득 벌꿀이가 생각날 때, 어느날 밤 벌꿀이의 꿈에서 내가 바비큐를 뜯어먹는 날이 올 때, 서로에게 좋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김 없이 연락하고 만나고 또 아무렇지 않게 헤어질 것이다. 




다른 한 명은 한국일보 최문선 기자님이다.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신문 기사를 즐겨 읽던 때 처음 알게된 분이다. 사실 개인적인 친분은 물론이고, 별다른 인연도 없다. 그럼에도 왠지 간간히 기자님 생각이 나고, 그럴 때마다 나는 검색창에 성함을 검색해보곤 한다. 여전히 글을 쓰시는지 궁금해서다.


처음 기자님의 칼럼을 읽었던 날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 기자 생활과 글에 대한 애정이 뒤섞여 있던 그 때, [36.5℃]라는 코너에 연재된 칼럼을 읽고는 하루종일 마음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명확한 메시지와 힘찬 문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어느새 최문선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인식돼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간간히 기자님의 글을 찾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출근길 버스 안에서. 초록창에 이름을 검색하고 칼럼을 찬찬히 읽어내려간다. 그러면 일상에 묻혀버렸던 세상을 향한 관심과 왠지 모를 정의감이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 된다. 처음 기자님의 칼럼을 읽었던 그 날로 돌아가, 나도 이 같은 글을 쓸 수 있길 바라게 된다.


오늘 역시 그랬다. 출근 직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갑자기 떠오른 기자님 성함을 검색했고, 지난주에 올라온 새로운 칼럼을 읽었다. 역시나 공감했고 또 한 번 감탄했다. 오늘 하루에 붙일 포스트잇에 그 글의 제목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간간히 이어지는 관심'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내기를 바라고 또 응원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는 벌꿀이가 지금처럼 잘 지내길 바라고, 기자님이 앞으로도 좋은 글을 써주시길 응원한다. 간간히 그들을 떠올리며 오래토록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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