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쓸 말이 없다."
혹, 나의 90일 꾸준함 프로젝트를 챙겨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제는 무척 당황하셨을 것 같다. 시작한 지 3일만에 포기라니.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결단으로 시작했던 일 아니었던가. 맞다. 그랬다. 그래서 나 또한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머쓱했다. 그럼에도 글을 올릴 수는 없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할 말이 없었다. 매일 같이 글을 써 가는 나를 상상하며 시작한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난관을 맞이한 것이다. 어딘가 비참한 기분이었다. 무엇이라도 써보고 싶었으나 최근 내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여러 단상들을 이곳에 끄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운 경험도, 잘 정리된 사색도 아닌 얕고 무의미한 생각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야 무엇인가를 쓰고 말겠다며 하루종일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책에서 감명 깊은 구절을 보았을 때 '오늘은 이것에 대해 좀 써볼까'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종일 쉴새없이 몰아치는 미디어의 정보들과 사람들의 연락 속에 순간의 감상들은 모두 떠내려가버리고 어렴풋한 기억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공허했다. 시간을 흘리듯 삶도 생각도 나 자신도 쉬이 놓쳐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번엔 명확한 원인을 꼽을 수가 없다. 내가 주의깊지 못했던 탓인지, 기억을 믿고 메모해두지 않은 것이 이유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방대한 이미지와 정보를 휘발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익숙해진 현대의 문화를 탓해야 하는 것일지.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소설 파우스트에 나오는 글귀다. 현재 내 인스타그램의 프로필란에 자리한 문장이기도 하다. 문맥상 저 문장이 가진 의미와는 살짝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처음 SNS를 시작하면서 시간과 경험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정말 아름다웠구나 하고 되돌아보기를 바라며 적었었다. 그때의 마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마음과 같다. 지금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이곳에 담아내고 싶다.
그렇다면 내일은 어떤 글을 써야할까. 어떤 말을 적을 수 있을까. 무엇을 주제로, 어떤 내용으로, 어느 정도의 분량으로. 무엇이든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