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
오늘은 대학 시절 살던 동네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노키즈존에 대한 짧은 일화이자, 우리 사회의 관용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고민해본 흔적이다.
-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목청이 아주 좋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무렵에 집에 있으면, 놀이터에서 뛰고 구르고 꺄르륵거리는 소리에 온 동네가 떠들썩해질 정도다. 잘 들어보면 사람은 몇 없는데 그 몇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편이다.
조금 전에도 저녁을 먹고서 조용히 책이나 읽으려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오늘도 역시나 왁자지껄한 애들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목청에서 흘러나오는 우렁찬 돌고래 소리와 부모님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 으하하하 유쾌하게 웃는 소리까지. 도통 집중이 잘 안 되길래 무슨 대화가 오가나 가만히 듣다 보니, 문득 우리 가게에 왔던 한 손님이 생각났다.
"혹시 여기 노키즈 존이에요?"
젊은 부부였고, 식사를 마칠 즈음 아주 조심스레 저 질문을 했다. 처음 들어본 질문이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마침 사장님한테 물어보셨으니 그냥 '우리 안 그런데 왜 물어보지?'라고 생각하며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사장님이 뭔가 더듬더듬 "그런 건 아닌데...아이들이 오면 식사하시기 불편할 수도 있어요"라는 거다. 사실 사장님의 대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 어린이 손님들이 오면 숟가락을 미리 꺼내 둘지 언정 인상을 찌푸리거나 불만스러워했던 사장님이 아니었기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래서인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던 그 어머니의 표정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주 멋쩍고 씁쓸하고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다시 한번 물어보던 그 얼굴.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 아들 한번 맛 보여주고 싶은데 안될까요? 다섯 살이라 그렇게 시끄럽진 않을 거예요"
누가 그분들을 그렇게 눈치 보게 만들었을까. 대체 어떤 상황과 어떤 말을 겪어왔길래, 조금만 조용한 식당이어도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일 거란 낙인을 스스로 찍어버리게 된 걸까. 아마도 시선, 아마도 말 한마디겠지.
시끄러움, 산만함, 정신없음, 고집, 고함, 떼쓰기. 어린이 또는 아이라는 단어에 들러붙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모두 어른들에게서 왔다. 정확히는 어른의 시선에서 왔다. 조용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타인의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서 말이다. 다들 언젠가 어디에선가, 시끄럽고 산만한 아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거다.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흘끔 거리는 시선 한 번은 줬을 거고, 속으로 적당히 좀 하지라는 생각도 한 번쯤 떠올려봤을 거다. 그 가시 박힌 속내들이 모여서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만들었을 거고,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눈치 줄 수 있는 권리를 쥐어줬을 거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고 또 아이 자체보다는 부모의 태도가 문제될 깨가 많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보면 참 웃긴다. '적당히'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오는 거며, 그걸 이해하고 행동을 조절할 수 있으면 그게 아이인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회가 약자 중 하나인 아이들에 대해 노키즈라는 출입금지 팻말을 아무렇지않게 사용할 수 있는 건지.
관용과 배려와 인내가 사라져 가는 오늘이 참 안타깝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주변엔 적막밖에 남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