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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10. 2018

엄마의 자랑

| About, mother |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너 방송 탄 거 좀 보자! "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뜬금없이 큰아버지가 말씀하신다. 3년도 더 된 거라고 지금은 못 찾는다고 얼버무렸지만, 나는 안다. 아빠의 유튜브에 수없이 검색했을 내 이름을. 기록이라도 삭제할까 싶었지만 아빠의 자랑이자 둘째 딸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방송에 처음 출연했을 때 성격상 나를 잘 오픈 하지 않고, 또 얼마나 오래 할지 몰라서 집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 10분짜리 영상은 자랑할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을 본 아빠가 엄마에게 묻더란다.

"오늘 막내딸 노란 옷 입고 나갔어?"


집에 오니까 엄마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입가에는 호기심과 의미 모를 미소가 머금어있다. 순간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 내심 나도 모르게 설레었다.

 “너 왜 테레비 나오는 거 왜 얘기 안 해?”

뭐라고 말할지 몰라 짧은 정적과 함께 멋쩍은 미소를 비췄다. "엉??? 뭐여~" 하고는 창피한 마음을 숨겼다. 사실 생방송에 부모님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실수라도 할까 싶었다.

그 뒤로 엄마는 잘 하지도 못하는 인터넷 검색을 뒤적거리며 딸이 출연하는 그 짧은 십 분짜리 방송을 안, 밖으로 자랑한다. 어느 순간 엄마의 자랑이 된 것이다.


Photo by Farrel Nobel on Unsplash


예전에 옥외광고로 '나는 엄마의 자랑이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조금 부담스러웠고 광고판 밑에서 울렁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들이 정말 부모님의 자랑이 될 수 있을까? 작은 기업밖에 들어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여기는 현실에서 자신 있게 "엄마! 나를 자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청춘이 얼마나 될까. 엄마의 자랑이 되기 위해서 의미 없이 좋은 포장지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추운 겨울, 한참을 그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하늘은 더 반짝거리고 날 선 빛으로 날 쏘는 것 같았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라고 하였을 때도, 함께 TV를 시청하던 엄마가 그 대사를 들었을까 마음 졸인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어느 날 엄마가 이모랑 통화를 하는데 한참 웃음꽃이 핀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 이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얘가 그렇게 설거지를 잘해~ 야물딱져. 내가 작은애한테는 믿고 부엌 맡기잖아~

엄마는 크고 화려한 자랑거리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의 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었나 보다. 설거지를 잘 하는 그런 소소한 '딸'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엄마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청춘은 퇴색되고 사랑은 시들고 우정의 나뭇잎은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어머니의 은근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 나간다.
-올리버 호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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