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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10. 2018

간장게장

| About, mother |     만선을 기다리던 딸아이


엄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오징어볶음이나 김치찌개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간장게장!!"

간장게장.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온 적이 없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날것과 콩을 안 드시는 통에 찬으로 올라오지 않는 두 가지 중 하나. 나 조차도 게장을 먹기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엄마가 잘하는 음식이 아니라, 식구들이 남김없이 잘 먹는 음식이 아니라, 엄마도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 말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그런-


무엇이 그렇게 어렵고 바빠서 게장 하나 먹으러 가지 못했나 싶었다.

다음날 점심, 간장게장 먹으러 가자는 말에 괜히 그리 대답했나 싶은 표정을 짓는다.

"그냥 해본 말이야. 어제 물어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Photo by Adam Wyman on Unsplash


먼저 내려가서 차 시동을 거는 그 짧은 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10분 거리에 있는 게장집이 그렇게 맛있다며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왜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나. 10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역시 고기 질이 다르다며 이야기를 나눌 때 왜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나.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는  딸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게장집의 이모님께 엄마가 칭찬의 말을 건넨다.

"찬이 너무 맛있어요~ 잘 먹었어요. 또 올게요."

인스타인가 페부루인가에도 칭찬하는 글 많이 많이 쓰라고 하며 배가 너무 불러서 커피 들어갈 자리도 없단다. 엄마는 게장 하나로도 오후 내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동창회 총무의 전화를 받자마자 식당은 어디로 가냐며 횟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창회에 나섰던 것도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무심한 딸이었다 내가. 간장게장이 뭐라고.


며칠 뒤 언니, 엄마와 함께 쇼핑을 나섰다.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또다시 "게장 먹으러 갈래?"라고 묻는다. 언니가 "엄마 나 게장 안 먹어요." 하자 "밑반찬 잘 나와!"라고 말해서 우리 셋은 모두 엄마가 게장에 홀릭됐다며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고는 결국 다른 메뉴를 먹으러 갔지만 엄마는 뒤돌아 게장집에게 '내가 꼭 다시 올게. 기다려!' 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엄마는 강화도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배를 타셨다.

어촌 출신 사람들은 수산물이 질린다고 하던데, 엄마는 생선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옛이야기를 한다.

옆집 언니한테 나눠준 소라 이야기에 어떻게 생선을 말렸는지에 대한 추억들.

그럴 땐 61살의 엄마가 아니라 만선을 기다리는 딸아이의 모습인 16살의 '애자'가 보인다.

수산물의 비릿한 냄새 일지라도 엄마에겐 달콤한 고향의 향내임에-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머니의 자식이며, 그 젖으로 자랐다
- 괴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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