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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 About, mother | 만선을 기다리던 딸아이

by 당근


엄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오징어볶음이나 김치찌개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간장게장!!"

간장게장.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온 적이 없는 반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날것과 콩을 안 드시는 통에 찬으로 올라오지 않는 두 가지 중 하나. 나 조차도 게장을 먹기 시작한 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엄마가 잘하는 음식이 아니라, 식구들이 남김없이 잘 먹는 음식이 아니라, 엄마도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 말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그런-


무엇이 그렇게 어렵고 바빠서 게장 하나 먹으러 가지 못했나 싶었다.

다음날 점심, 간장게장 먹으러 가자는 말에 괜히 그리 대답했나 싶은 표정을 짓는다.

"그냥 해본 말이야. 어제 물어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adam-wyman-20682-unsplash.jpg Photo by Adam Wyman on Unsplash


먼저 내려가서 차 시동을 거는 그 짧은 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10분 거리에 있는 게장집이 그렇게 맛있다며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왜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나. 10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역시 고기 질이 다르다며 이야기를 나눌 때 왜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나.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는 딸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게장집의 이모님께 엄마가 칭찬의 말을 건넨다.

"찬이 너무 맛있어요~ 잘 먹었어요. 또 올게요."

인스타인가 페부루인가에도 칭찬하는 글 많이 많이 쓰라고 하며 배가 너무 불러서 커피 들어갈 자리도 없단다. 엄마는 게장 하나로도 오후 내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동창회 총무의 전화를 받자마자 식당은 어디로 가냐며 횟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창회에 나섰던 것도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무심한 딸이었다 내가. 간장게장이 뭐라고.


며칠 뒤 언니, 엄마와 함께 쇼핑을 나섰다.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또다시 "게장 먹으러 갈래?"라고 묻는다. 언니가 "엄마 나 게장 안 먹어요." 하자 "밑반찬 잘 나와!"라고 말해서 우리 셋은 모두 엄마가 게장에 홀릭됐다며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고는 결국 다른 메뉴를 먹으러 갔지만 엄마는 뒤돌아 게장집에게 '내가 꼭 다시 올게. 기다려!' 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엄마는 강화도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배를 타셨다.

어촌 출신 사람들은 수산물이 질린다고 하던데, 엄마는 생선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옛이야기를 한다.

옆집 언니한테 나눠준 소라 이야기에 어떻게 생선을 말렸는지에 대한 추억들.

그럴 땐 61살의 엄마가 아니라 만선을 기다리는 딸아이의 모습인 16살의 '애자'가 보인다.

수산물의 비릿한 냄새 일지라도 엄마에겐 달콤한 고향의 향내임에-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머니의 자식이며, 그 젖으로 자랐다
- 괴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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