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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11. 2018

갱년기

| About, mother |     엄마의 사춘기

 

엄마가 나이가 드시면 갱년기라고 하잖아요? 그럼 우리 아빠들은 뭐라고 할까요?

커뮤니케이션 강의에서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 대답을 못하거나, 그러게? 하는 반응이다.

“아빠들도! 갱년기예요- 우리 엄마뿐 아니라 아빠들한테도 잘 하자고요~”하는 피드백을 했었
또 
남자친구에게 어머니가 갱년기라 힘드실 수 도 있다며 이럴 때 자식들의 역할이 중요하니 잘해야 한다고, 너희 집에는 남자밖에 없어서 모를 거라고 철든 딸처럼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스스로에게 '너나 잘해. 정말 웃긴다 얘!'라고 말했었다.


사실 직접 겪어 보지 않아서 엄마의 갱년기에 대해 잘 모른다. 호르몬 변화를 안다고 감정을 아는 건 아니니까. 말로는 공감한다지만, 진짜 겪어보지 않은 거니까사람은 모두 제 입장에서 겪어보고 해봐야 아는 것 아닌가.


갱년기를 삼키는 엄마를 보는데 내 지난 사춘기 시절이 오버랩됐다정말 지독히도 삐뚤었던 시설이 이었는데, 딱 중2 때였을 거다.

방학숙제에 제출한 글쓰기를 선생님이 마음대로 회에 출품했다고, 대회 날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작품을 내어 학교의 얼굴에 먹칠을 했었다. 또 복장 점검에서 빼앗긴 치마를 교무실에서 몰래 찾아온 뒤 내 치마가 어디 있냐며 반문해 선생님도 포기하게 만들었었다.


세상이 부정적이고 편파적으로 보였던 그 시절처럼, 마에게도 갱년기는 그랬을 것이다.

눈을 감고 뜨는 자체가 싫어서 빨래처럼 널려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날씨가 좋거나 흐린 게 미치도록 싫어서 하늘을 닫아버리고 바람을 잡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라도 붙잡고 소리치고 싶어 헤어 나올 수 없는 숲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Photo by Kinga Cichewicz on Unsplash


엄마가 다리에 간지러움증을 호소하는 일이 한 10년이 된 것 같다. 여름이 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속에서 열이 올라와 미친 듯이 다리가 간지럽다고 했다. 친구 어머니들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발병시기가 모두 폐경 이후라는 걸 보면 갱년기에 분출하지 못한 화가 열꽃처럼 올라오는 것 같다.  피부과에서 처방 받는 독한 약을 먹으면 조금은 나아지지만 고기도 먹지 못하고, 얼굴이 붓는다. 엄마는 얼굴이 탱탱해진다며 농담 삼아 웃지만 그 속에 독한 약 성분이 퍼져 내성은 생기지 않을까, 속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엄마는 갱년기가 최고로 달했을 때 당신이 컨트롤이 되지 않았는지 아빠에게 조금 예민하고 변덕스러워도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때는 그 말을 응원해주지 않는 아빠가 미웠는데, 생각해보면 그 말은 단연 아빠뿐 아니라 내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듣지 못한 걸까, 듣지 않은 걸까.


갱년기의 '更'은 '다시갱'자로 '다시 시작한다' 혹은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폐경기의 영어단어인 'menopause'의 어원은 '남자로부터 자유로워지다 pause from men'에서 유래되었다.

그 시절 엄마는 갱년기를 삼켜 다시 시작하는 시기였고,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고픈 용기를 힘껏 응원해 주지 못해서, 그리고 함께 즐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엄마의 인생의 전환점을 함께 하고 싶다.







아름다운 여성의 시기는 짧고,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시기는 영원한 것이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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