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out, mother | 애증과 그리움 사이
병원에 계실 때 찾아 뵌 적이 있었다. 나에게 누구냐고 물으셨다.
"할머니 딸 애자 알죠? 애자 딸이에요! 손녀 손녀!"
힘이 없으신지 할머니는 다시 침상에 누우셨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호전된 건강상태로 돌아왔고, 흐트러진 정신을 바로잡아 몇 년을 더 연명하셨다. 고향집을 떠나 삼촌이 계신 인천으로 올라오셨는데 아마 그 시간이 할머니에게는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직도 그 시간에 당신의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할머니 병원에 계시니까 빨리 와”
언니의 전화에 밥을 먹다 말고 급히 일어나야 했다. 순간 할머니 걱정보다 놀랬을 엄마가 더 걱정됐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옆인 강화도 선산에 모셨고, 가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엄마와 이모들은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오열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어떠한 감정을 뛰어넘어 '엄마'의 죽음은 상상을 하지 못한 슬픔이었을 것 같다.
며칠 전은 할머니의 제사였다. 할머니의 유언대로 교회 식으로 기일을 보낸다.
엄마를 포함해 이모들도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찬송가를 이제 막 말을 떼는 아이처럼 중얼거린다.
그 순간이 무겁다. 그리 느껴진 건 생소하고 두꺼운 성경책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에 대한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올해 동료 선생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처럼 키워주셔서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동료 선생님은 불안해 보였고, 돌아가신 이후에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나 기억이 많이 없어서 매우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엄마가 당신의 손주를 딸인 나보다 더 챙겨 보살피고 있기에 내 조카가 우리 엄마를 '그런 할머니'로 생각할 순 있겠다 싶었다.
“엄마 그거 알아? 미안한데.. 나는 할머니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왜?”
“삼촌만 자식 대우하셨잖아, 그 자식들만 예뻐하시고. 뭐 밥도 따로 먹었는데-”
“할머니가 좀 유별나긴 했지. 나도 어떨 때는 네 아빠한테 미안했다니까”
엄마는 태어남과 동시에 “또 딸이네!” 하는 탄식을 들었다고 했다. 탄식뿐이었으랴, 유년시절을 차별과 매서움 속에서 보냈을 것이다. 다음 해에는 꼭 아들 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애자(愛子)로 작명하셨다는데.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으니 아들의 그림자를 머리에 이고 산 것이다.
묘석에 막내 남동생의 아들딸 이름은 올라가 있어도, 딸들의 자식들은 이름 석자 올리지 못했는데 억울하지 않을까.
“엄마 시대에도 그러는데 네 할머니 시대는 어땠겠어. 그냥 시대상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되더라.
너도 더 나이 들면 지금 엄마가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될 거야”
나이가 드니 할머니가 이해된다고 했다.
하긴, 봄에 태어나면 춘례가 되고 막내로 태어나면 말숙이가 되던 시대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할머니의 행동이 유별난 처사가 아이었을 수 도 있다.
아직도 엄마는 큐빅이 알알이 박힌 분홍색 조끼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나는지 다가가 만지작 거린다.
그 모습이 마치 이제 나는 괜찮다고, 당신은 행복하시냐고 말하며 다시 비녀를 꽂아드리는 것 같다.
서운함이 지나간 자리에 애증이 남아 엄마는 아직도 할머니를 그리고 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 한시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