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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13. 2018

걱정

| About, mother |     걱정 열매 주렁주렁


“안돼. 하지마. 정말 걱정이다.”

엄마는 유달리 걱정이 많다. 가끔은 정말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사서 하는 것 같다.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산다. 걱정이 너무 많아 걸음마저 조심스러운 엄마 뱃속에서, 망아지처럼 ‘이거 해 보자! 저거 해 보자!' 하는 나 같은 딸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입술에 백반증이 있다. '여자아이 얼굴에 더 크게 번질까' 하는 걱정을 포대기 삼아 나를 업고 수년간 전국에 유명하다는 병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나가는 스님은 나를보고 "아이에게 공을 많이 들이셔야 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무슨 의미 였는지 모르겠지만 괜한 스님의 말은 또 엄마의 걱정으로 이어졌다.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턱이 깨지고, 회전문에 끼여서 귀가 찢어진 적도 있다. 또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하다 돌부리에 넘어져 이마를 수십 바늘 꿰메었다. 수술을 여러번 했지만 아직도 그 흉이 이마 한가운데 선명이 남아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울지 않고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마치 다음에는 어떤 사고를 칠까 궁리하는 것처럼.

견주들도 강아지들이 조용하게 있으면 사고 친 거 아닐까 해서 더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엄마의 걱정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Photo by Sai De Silva on Unsplash


20대 중반 쯤 되었을 때 형부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이드미러를 박살 낸 전과를 만들어 낸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차를 사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난 출장이 많으니까 차가 필요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돼!! 여자애가 그것도 무슨 어린애가 차야!”


역시 그럴 줄 알았다.

60넘은 이모도 운전하시는데, 6살도 아니고 26살이 왜 운전을 못하냐며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며칠을 따라다닌 결과 일주일 뒤 나는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엄마의 걱정은 잡아줄 수 없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손잡이부터 잡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걱정은 역시 걱정인가보다.

“엄마 택시비 내가 다 아껴주고 있잖아. 기사 노릇까지 하고 있는 걸.”

엄마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어깨를 으쓱하고 웃는다. 사실 잃을게 많아 두려웠던 거라는 것 잘 안다.


몇 해 전 보라카이를 갔을 때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더 먼 바다로 나가려고 하자 그 아이의 엄마가 멀리 가면 위험하다며 3m 근방에서 놀라고 다그쳤다.

7m 정도만 나가면 정말 예쁜 물고기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는 엄마의 걱정에 뿌연 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7m가 아니라 70m를 나간 기분이 드는 엄마의 노파심이었겠지.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 아버지가 8시에 전화해 “늦게 다니면 위험하다. 빨리 들어와라.”하시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걱정처럼.









쌀과 어머니는 닮아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영원한 그리움이다.
- 만화가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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