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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 Sep 07. 2018

꽃과 거름

| Sorry, mother |     나를 꽃 피우기 위해


“음악들을 때 가사가 너무 잘 들린다. 심금을 울리더라”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무슨 상관관계냐고 피식 웃었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가족사진'과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들으면 10초 안에 눈물이 흐르는 특기도 생겼으니 말이다.

사연 있는 사람처럼 새벽에 미친 듯이 울고 출근 한 날 동료에게 어제 쌍꺼풀 수술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김진호, 가족사진



엄마가 거름이 된 건 맞는 거 같은데 내가 예쁜 꽃이 되었는진 모르겠다. 내가 봄날 들에 산아무 데나 피어있는 깽깽이풀이여도 예쁘다고 할 엄마지만.

자식을 낳아봐야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자식을 낳아 보지 않았으니 아직까지는 절대 그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딱 너 같은 딸 낳아봐야 안다. "

샐쭉 거리는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얼마나 예쁜지" 하며 새초롬 한 표정으로 뒷말을 잇는다. 


엄마 아빠의 예전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멋쟁이 엄마'를 발견했다. 와이드 팬츠에 청자켓을 입은 엄마는 지금 보니 셀럽이 따로 없다. 화려한 옷매무새와 유행의 상징인 뽀글 머리. 신감 있는 표정과 포즈를 보니 엄마의 처녀시절이 더 궁금해졌다. 엄마가 뱃살이 없던 시절이 있었냐며 놀려대자 너희들 낳고 이렇게 됐으니 책임지라고 한다. 


Photo by Marivi Pazos on Unsplash



“손주가 있으니까 엄마는 이제 할미꽃이네?”

“뭐 어때 그것도 꽃인데!” 

그리고는  할미꽃보다 더 붉고 환한 미소를 띤다. 허리가 휜 할미꽃이라도 엄마에게서는 진하고 깊은 향이 날 것이다. 엄마만이 낼 수 있는 그런 향. 거실에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라벤더를 꽂아 놔야겠다.


어느 날 보니 나는 엄마를 닮아있다. 그것도 참 많이 닮았다. 어쩌면 비슷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엄마가 날 조각하고 다듬어서 당신보다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나 보다.

어렸을 땐 내가 엄마와 닮았는지 몰랐다. 가족들보다 연한 머리카락 때문에 언니는 '다리 밑에서 주어온 동생' 이라며 장난을 쳤고, 나는 정말 그런 줄 알며 밤새 '진짜 우리 엄마는 어디 있을까' 라며 울었으니까.

장난 삼아 본 사주에서 내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돌처럼 굳건하고 모레처럼 부드럽단다. 물론 고객의기분을 배려하여 최대한 좋은 말로 풀어서 나열했겠지만, 뭐 썩 들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고, 나이가 들면  더 엄마처럼 될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다. 


31살. 엄마는 당신의 꽃피던 시절에 나를 만나 행복했을까? 출장으로 인해 언니의 탄생을 보지 못한 아빠는 실제로 신생아를 본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원래 아기가 이렇게 쭈글거리냐며 웬 이티가 나왔다고 했다니,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가슴을 얼마나 쓸어 내렸을까. 딸아이가 이티 같다니!

"아휴 이거 없었음 어쩔뻔했어"

가끔 엄마가 내 머릴 쓰다듬으면서 어미 소 같은 눈빛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사실 낳지 않으려 했다는데, 젊은 '애자'는 수 천 번의 고민을 했으리라.

병원과 집으로 옮기는 발걸음에 인생과 생명에 대한 책임, 부담, 서러움, 기대감-

여러 가지 감정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올해 나의 생일에는 낳느라 고생하셨다고 인디언 핑크색 셔츠를 사드렸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골랐는데, 사주는 생색을 내고 내가 좀 빌려 입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생일 경조사비가 나와 사드렸는데, 사실 나는 태어나느라 별 고생하지 않았지만 내 생일날 가장 고생한 건 엄마이기 때문에 이 경조사비는 당연 엄마의 몫인 것 같다.

“산모복 색상이랑 비슷하니까 31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서 입어요. 딱이네 딱
괜한 너스레 엄마는 그거 말 된다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 아빠가 둘 다 A형인데 네가 B형인 거야. 이게 말이 안 되잖아~ 보니깐 아빠가 AB형인 거 있지?”

엄마가 나의 탄생일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니 내가 모르는 '우리'의 이야기가 꽤나 많다. 그렇게 한참 나의 유년시절과 엄마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엄마는 잊어버렸던 젊은 시절 '애자'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들(子)은 늙으신(老) 어머니를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모습을 본 따서 만들어진 한자가
‘효도 효(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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