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21세기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
폭스바겐 골프, 피아트 판다, BMW M1, 렉서스 GS, 마세라티 기블리, 포드 머스탱, 알파 로메오 줄리아 스프린트, 로터스 에스프리, 그리고 현대 포니와 쏘나타까지 전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이 각자 보유한 이 히트작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19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말 그대로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인 마리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모두가 교회와 궁전의 프레스코화와 장식 미술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었고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그들 옆에서 작업을 지켜봤다. 지금도 그렇지만 장식 미술은 표면이 고르지 않고 곡면이 많은 천장이나 벽면에 그림을 그려야했기에, 그는 아버지에게서 프리핸드 드로잉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됐기에 결과론일 수 있지만, 캔버스가 아닌 환경에서도 깔끔한 선을 그리는 것은 자동차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재능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국립 예술학교에 입학한 청년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그러나 순수 미술보다는 상업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확실한 조언을 얻은 뒤 상업적인 디자이너의 삶을 선택했다. 우리는 그가 디자인 한 자동차가 '예술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공학적' 제품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오히려 아름답기만 한 자동차가 아닌 정말로 '예술적인' 자동차를 디자인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969년 가을, 폭스바겐이 비틀의 매출 하락으로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토리노 오토쇼에 파견된 폭스바겐 최고의 전문가들이 선정한 6개의 가장 뛰어난 자동차 디자인 중에서 4개가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당시만해도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뛰어난 디자인으로 주목 받는 신예였지만, 폭스바겐의 엔지니어들이 보기에는 31살 밖에 안된 예쁘장한 스포츠카나 그리는 진짜 자동차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들은 피아트 128에 기초한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주지아로에게 직접 측정한 수치들을 들이대며 프로젝트를 설명했지만, 주지아로가 보기에 그들이 제시하는 수치는 부정확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건 128의 치수가 아닌데요?"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지적에 엔지니어들은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지만, 그가 더 자세한 수치를 제시하고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최고의 기술자라는 자부심이 넘치던 독일인들은 이탈리아 꼬맹이에게 자존심이 구겨진 것이 화가 났는지 자동차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공격적으로 쏟아냈다. 하지만 '공학적'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철학을 가진 주지아로는 당연하게도 모든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았고, 엔지니어 중 한명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로 다른 부서에 세부 사항을 확인했는데도 주지아로의 답변이 정확하자 결국 그 프로젝트는 그들이 얕잡아봤던 젊은 이탈리아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로 넘어갔다.
이렇게 탄생한 차가 바로 폭스바겐 골프, 현재까지 4천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자동차 역사에 남을 해치백의 전설이다.
주지아로가 폭스바겐 골프로 벼락 스타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는 1955년 고등학생 시절에 이탈리아 토리노의 피아트 디자인 사무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거대한 피아트 공장과 피닌파리, 베르토네 같은 전설적인 디자인 회사들이 모여 있던 이탈리아의 자동차 도시 토리노는 어린 디자이너에게 최고의 학교이자 현장이었다.
그리고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21살이 되었을 때, 그는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자동차 제작자인 누치오 베르토네에게 신형 알파 로메오를 그리는 일을 제안 받았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삼국지연의'의 격언처럼 주지아로는 첫번째 프로젝트임에도 훌륭하게 디자인을 그려냈고, 그 디자인은 그대로 알파 로메오에 납품되었다. 이후 그는 베르토네의 회사에서 알파 로메오의 다양한 외관과 새로운 조명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고 1960년대 이후 자동차 조명이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배치를 띄게 되면서 주목 받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리고 1963년에는 GM(제너럴모터스)의 쉐보레 코베어 스포츠 버전을 베르토네에서 맡게 되면서 첫번째 사진에 주지아로와 함께 있던 쉐보레 코베어 테츠도 콘셉트 카가 탄생하였다. 이 차는 양산에는 실패하였지만 언론의 엄청난 주목을 받을만큼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여줬고, 이후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의 스포츠카 디자인에 큰 영감과 영향을 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베르토네를 떠나 또다른 카로체리아(소량 수제 자동차 공방)인 기아로 이적해 마세라티 기블리, 드 토마소 망구스타 등의 혁신적인 스포츠카들을 디자인했다. 놀라운 점은 주지아로의 디자인은 아름답고 혁신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실용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구현이 어렵거나 비현실적인 디자인으로 엔지니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과 달리 그는 '공학적' 제품을 만든다는 철학처럼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제작했다. 이것이 그를 120명의 기자가 뽑은 1999년 '21세기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만든 차별점이 아니었을까.
1968년 주지아로는 이탈디자인 주지아로를 설립해 독립한다. 그는 위에서 소개한 폭스바겐 골프를 비롯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현대 포니, 쏘나타는 물론 로터스 엘리스, 미쓰비시 파제로(현대 갤로퍼의 원판) 등 60년 동안 200여대의 자동차를 디자인했고,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는 6천만대가 넘게 팔렸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무언가 이름을 들어본 듯한 명차의 디자이너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정도이다.
2015년 자신이 설립한 이탈디자인 주지아로를 떠난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이미 디자이너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룬 전설임에도 아들 파브리치오와 함께 GFG스타일을 세우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도 새로운 혁신을 내놓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술은 예술일 뿐 '공학적'인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그의 철학은 오히려 주지아로의 증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예술혼을 완성 시킨 신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를 그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며, 주지아로가 내일은 또 어떤 아름다운 디자인과 혁신을 내놓을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없는 시대의 자동차 디자인은 어떻게 될지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