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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사요 Apr 26. 2024

Vintage Era

[Vol.6] 자동차, 대중화를 준비하다

빈티지기의 명차 마이바흐 체펠린 DS7 /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산업에서 1920년대는 '빈티지기(Vintage Era)'로 불리는 시기이다. 이 시대는 여전히 영향력 있는 귀족과 부유한 자본가들을 위한 고급차가 주류였지만, 미국의 포드 T와 유럽의 오스틴 세븐으로 대표되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가 탄생한 때이기도 하다.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마차를 대신할 뿐이던 자동차가 오늘날 '마이카' 시대로 오기까지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빈티지기를 읽으면 앞으로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보일지도 모른다.


당시 '혁신' 그 자체였던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에서 생산되고 있는 포드 모델 T

 포드 컴퍼니에서 1908년 내놓은 모델 T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 시스템, 단일 모델의 단일 색상 생산, 차체의 규격화, 부품의 최소화, 유통 마진의 최소화를 통해 포드 컴퍼니는 1920년대에 무려 20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선보이며 현대 자동차 산업 그 자체를 탄생 시켰다.


 당시 고급차들의 가격이 2,000달러~3,000달러로, 포드 T의 10배에 달했다는 것과 200달러라는 가격이 당시 일반적인 노동자의 2개월치 임금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변화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922년 노엘 불록이 콜로라도 파익스 피크의 자동차 경주에 타고 나왔던 '올드 리즈(Old Liz)

 그러나 포드 T는 단순히 '가격'에서만 혁신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규격화된 차체와 조립 공정, 단순화된 부품은 자동차, 아니 '기계'에게 가장 중요한 '신뢰성'을 갖추게 하는 효과까지 불러왔다.


 1922년 미국 콜로라도 주 파익스 피크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에 참가한 노엘 불록은 본인과 함께 대회에 참가한 애차인 모델 T를 올드 리즈라고 불렀다. 이름 그대로 낡고 오래된 그의 모델 T는 엔진부를 덮는 후드도 사라지고 페인트칠도 모두 벗겨진 상태로 구경꾼들이 '깡통(tin can'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대회의 다른 출전 자동차들은 모두 최신형의 레이스카였고, 노엘 불록이 이 올드 리즈를 타고 대회에 참여한 이유 역시 단지 구경꾼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지 진지하게 1등을 노리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레이스 종반이 되자 모두가 놀랄만한 사태가 벌어졌다.




 오늘날까지도 험난한 코스로 인해 기계적 결함으로 레이스를 중도 포기하는 참가자가 나올 정도인 파익스 피크에서 다른 모든 차들이 기계 고장으로 멈춰서는 동안 노엘 불록의 올드 리즈만이 살아남아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다. 이 일로 포드 T는 '틴 리지(깡통 리지)'라는 애칭을 얻었고, 승합차, 구급차, 트랙터, 농업용 트럭은 물론 군용차량으로까지 사용되며 신뢰성을 증명해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한 '규격화'가 의외의 분야에서까지 빛을 발한 것이다.


1923년형 오스틴 세븐 투어러, 유럽의 자동차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이렇게 미국에서 포드 컴퍼니가 혁신을 통해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끄는 동안, 유럽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2년, 허버트 오스틴(Herbert Austin)이 이끌던 오스틴 사는 드디어 창업주의 꿈이기도 했던 '제대로 된 대중 자동차' 오스틴 세븐을 만들어냈다. 전쟁이 막 끝난 당시 영국의 상황에서 '대중을 위한 차' 오스틴 세븐은 가장 완벽한 선택지였고, 이는 1939년 까지 29만대가 넘는 판매량으로 이어지며 큰 성공을 거둔다. 유럽에도 '대중차', 혹은 '국민차'의 시대가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1922년식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 당시에도 고급차의 정점에 있는 브랜드였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1920년대의 빈티지기가 대중을 위한 자동차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이스파노-수이자, 란치아, 이소타 프라스키니, 호르히, 벤츠, 마이바흐, 벤틀리 등은 여전히 귀족과 부유한 자본가 등 상류층을 위한 고급차를 만들었고 대중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이 성장하는 시대의 한 켠에서도 이들 고급차 브랜드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정점에는 역시 롤스로이스, 부가티가 있었으며 이들은 오늘날 까지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의 브랜드로 남아있다.




 '자동차'는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탈 것'일 뿐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패션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자동차 브랜드들에서도 개인을 위한 다양한 옵션과 튜닝을 제공하는 지금 시대에, 그리고 전기차 시대의 도래로 인해 포드 T와 오스틴 세븐의 등장에 버금가는 수준의 충격이 시장을 때리고 있는 지금, 전통을 지키는 것과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 양쪽에 서 있는 자동차 브랜드들과 산업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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