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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주의자 Sep 25. 2024

다시 기록.

까무잡잡하고 흙냄새 나는 이야기.

나는 소심하지만 시끌벅적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딜 가든 정신없다는 소리를 항상 들었고, 유독 축구를 좋아해서 아침마다 동네 아저씨들과 조기축구를 하였다. 방과 후에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친구 놈들 한두 명씩 저녁을 먹으러 사라질 때즈음 나도 집에 돌아가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항상 까무잡잡하고 흙냄새가 잔뜩 풍기는 아이였고, 몸을 사리지 않고 축구를 하다 보니 무릎이 남아나질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기록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지?"라는 생각을 하다 떠오른 어린 시절. 펜과 종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내가 기록을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영국 유학길에 오르면서였다. 


흙이 깔린 운동장대신 잔디밭,

피범벅이던 무릎대신 잔디물,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하던 친구들은 대신 실제로 말이 안 통하는 친구들로. 


나는 여전히 재밌게 하루를 채웠지만, 위축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 시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생활의 하나하나를 기록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수다스러웠던 내가 쉽사리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잠시나마 내 생각을 펼칠 수 있었고, 또 정신없는 내가 잠시나마 집중하고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을 준 것 같다. 


시간은 흘러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게 디지털 노트며, 아이패드며 방황을 하다가, 2024년 다시 펜과 종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뉴질랜드에 정착해 Product Manager라는 열이면 열은 알아듣지 못하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면, 여느 사회 초년생들처럼 내 회사생활도 애잔하면서도 치열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보면 달라진 건 없다. 평소 걱정이 많고 비관적인 나의 수첩은 개인적인 고민과, 일에 대한 아이디어, 잊어버리지 않으려 급하게 써 내려간 메모들로 빼곡하다.


"지금의 나는 아직 고민하고, 탐구하는가?",

"5년,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내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은 어떤 일일까?" 


내 수첩을 가득 메운 개인적인 고민과 완벽하지 못해 내 노트밖을 보지 못한 잡생각을 하나씩 다시 써볼 생각이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쓰다 보면 막연함이 구체화된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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