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말랑해져.
늘 걷던 길도 조금은
느리게 걷게 되고,
말도 줄어들고,
혼자 있는 시간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
오늘도 그런 날이었어.
잿빛 하늘, 촉촉한 공기,
그리고 우산 속 나 혼자.
그 순간, 문득
내게도 ‘누군가와 우산을
나눠 쓴 기억이 있었나’ 하고
떠올려 보니, 기억 저편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어.
초등학교 저학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우산 없이 학교 앞에
서 있던 나의 기억.
저 멀리서 한 손에 우산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오던 아빠가 보였어.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숨을 헐떡이며
다른 한 손으로 내게 우산을 받춰줬어.
“우리 딸, 비 맞을까 봐
아빠가 얼마나 뛰어왔는지 몰라.”
그 말이 괜히 뭉클해지던 그때.
아빠의 다리와 내 어깨가 마주치며
삐져나온 다른 어깨는 조금 젖었지만
그때의 우산 속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따뜻한 공간이었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노트를 펼쳤어.
마치 아빠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던 것처럼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
“비가 올 땐, 우산 안으로 숨기보다
함께 걷는 마음이 더 중요하단다.
조금 젖어도 괜찮으니 그저 나란히
옆에서 언제나 같이 걸었으면 했단다.”
나는 노트를 펴쳐 쥐고는,
한참 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어.
이젠 다시는 아빠와 함께
우산을 나눠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프게 다가왔지만,
그날의 기억만큼은
언제나 내 마음 안에서
젖지 않고 따뜻하게 남을 것 같아.
언젠가 누군가 함께 우산을 쓰는 날이 오면
그 사람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
“우산 속 공간은 작지만,
우리 마음만은 한없이 넓은 공간을
함께 걸었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그렇게 오늘의 비를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아빠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걷던 그 날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