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꺼낸 말인데, 그 말에도 진심은 담겨 있었어.”
아빠와 다시 조금씩
말을 나누기 시작한 이후에도,
나는 자주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서
“이 말을 해야 할까 말까”를 반복했다.
그동안 못 했던 말,
미안했던 순간들,
감사하다는 인사, 그리고…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하지만 입술은 생각보다
쉽사리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건 아닌지,
다시 어색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그 모든 것이 말을 꺼내기엔
조금씩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른 김에
아빠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마당엔 바람이 스쳐가고 있었고,
잔잔한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괜히 머그잔을 돌리며
하는 둥 마는 둥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 솔직히 옛날엔 아빠가 좀 서운했었어.”
아빠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그랬구나.” 아빠의 늬앙스는
놀라움도, 억울함도 아니었다.
그저 ‘알고 있었어’라는 듯
나를 향한 조용한 인정이었다.
나는 그제야 조금 더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땐 그냥… 너무 어려서
아빠 마음을 잘 몰랐던 것 같아.”
“…지금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그때보다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어.”
말을 꺼낸 순간, 시선은 방향을 잃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한편으론 오래 묵혀둔 돌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아 편해졌다.
아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늦게 도착해도 그 말에 진심이 담기면
언제든 다 닿게 되어 있어.”
그 말에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가슴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숨 끝에 오래 참아온 한 마디가
수줍게 망설이며 따라 나왔다.
“…아빠,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그동안.”
아빠는 웃지도, 그렇다고
눈물을 글썽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 손등을 자기 손으로
포개듯 조용히 덮었다.
그 손의 온기는 말보다 먼저
내 마음으로 다가와 감싸 안았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진심은 언제 전해도 괜찮다는 걸.
사랑은 조금 늦게 꺼내도
그 온기를 잃지 않는다는 걸.
아빠,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기만 했던 단어들이
이제야 겨우 말이 되었어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당신은 한 번도 다그치지 않았죠.
오히려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내 말을 받아들여 주셨어요.
그건 아빠가 저를 사랑해온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저도 그 방식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