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의 여정 중에서
그대들은 이 거대한 밀물 속에서 썰물이 되기를 원하면서
자신을 극복하기보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
차라투스트라의 여정 중 "그대들은 이 거대한 밀물 속에서 썰물이 되기를 원하면서 자신을 극복하기보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가?"라고 말하는 문장은 짧지만 강렬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 문장에서 "거대한 밀물"은 단순히 어떤 시대적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더 높은 단계의 존재로 향하려는 상승 운동, 즉 진보의 압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관의 탄생, 기술과 사유의 확장,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통합한 거대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썰물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변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나는 태도, 시대적 도전에 맞서기보다 움츠러들려는 심리를 드러낸다. 이는 니체가 비판했던 반동적 인간의 모습과도 겹친다. 변화가 두렵기 때문에 과거의 안정된 구조로 돌아가려 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보다 기존의 것들에만 매달리는 인간상 말이다.
이어지는 표현에서 "짐승으로 되돌아간다"는 훨씬 더 강한 철학적 경고를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짐승은 단순한 동물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사유 능력, 자기 반성, 도덕적 판단, 자기극복의 의지 등을 포기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이성의 주체가 아니라 본능의 피동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기획하는 삶이 아니라 외부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삶을 말한다. 니체가 인간을 짐승에서 초인(Übermensch)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보았던 맥락에서 보면, 짐승으로의 회귀는 진보의 가능성을 스스로 거부하고 존재의 수직적 상승을 포기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문장은 놀라울 만큼 현대적 함의를 갖는다. 우리는 AI의 급격한 발전, 변화하는 문화 환경, 전 지구적 소통 구조 속에서 거대한 밀물과 같은 시대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익숙한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기 성찰보다 감정적 반응이 앞서고, 깊은 사유보다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며, 책임 있는 선택보다 편리함을 우선하는 경향은 우리를 더 높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은 본능의 지배를 강화한다. SNS의 자극적 구조, 즉각적인 정보 소비, 분열적 감정의 확산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에서 "반응하는 존재"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하나의 촉구이기도 하다. 시대가 거대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뒤로 물러서지 말라는, 인간의 불안과 나약함에 굴복하지 말라는, 그리고 본능의 차원으로 후퇴하지 말고 더 성숙하고 고양된 존재로 나아가라는 요청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정신적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결국 이 문장에 포함된 함축적 의미는 인간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의지에 대한 철학적 선언으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