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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표준식별체계를 돌아보다

웹툰 종주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중장기 필수 목표

by 나무를심는사람
웹툰표준식별체계.jpg 웹툰 UCI 활용 방안 개요. [자료=한국콘텐츠진흥원]


‘웹툰표준식별체계’는 (사)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으로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 온 과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국이 웹툰 종주국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산업의 공용 언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출판물에 ISBN이 있고, 음원에 ISRC 코드가 있듯이, 웹툰에도 작품과 회차를 식별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고유한 표준 코드와 데이터 체계를 만들자는 구상으로 시작이 된 일이기도 하다.


우선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보자면,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웹 콘텐츠 UCI'가 만들어지면서, 몇 가지 의미 있는 가시적 성과는 분명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는 “개념과 원칙에 대한 합의”를 상당 부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업계 안에서도 표준식별체계의 필요성은 이야기되었지만, 정작 무엇을 기준으로 코드 구조를 설계할 것인지, 작품·시리즈·회차·번역본을 어떻게 구분할지, 누가 관리 주체가 될지 등에 대해서는 정리된 안이 부족했었다. 현재는 협회 차원에서 꾸준히 제시했던 기본 구조와 데이터 항목, 운영 원칙에 대한 초안이 만들어 지고, 주요 수행 기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UCI 제도 운영 협의체 를 만들고 관련 부처와 유관 기관, 주요 플랫폼, 제작사, 창작자 단체와 계속해서 논의하며 공통분모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 받아 UCI 제도 운영 협의체에서는 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다.


두 번째로는,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서 실제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웹툰 콘텐츠 UCI의 운영 가능한 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주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방식으로 웹툰 작품에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그 번호를 유통·정산·통계·저작권 관리에 연동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 설계가 이루어졌고, 일부 플랫폼 및 파트너들과는 실제 적용을 위한 의견 교환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이해관계자가 한 번에 움직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단계별로 시범군을 설정하고, 연동 가능한 영역부터 데이터 구조를 맞추어 가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로는, 웹툰표준식별체계가 단순히 업계 내부의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향후 정부 정책·통계·지원사업·저작권 보호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인프라라는 점을 관련 기관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체계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웹툰을 “제대로 보는” 산업 통계가 나오고, 정책 타깃이 정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설명하고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제 이 시스템이 실제로 도입·확산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기대되는지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효과는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구조이다. 지금은 플랫폼마다 자체적인 작품 번호와 회차 관리 체계를 갖고 있고, 유통 과정에서의 데이터 구조도 제각각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동일한 작품이 여러 플랫폼·국가·형태(웹툰, 단행본, 영상화 등)로 활용될 경우에도, 그 흐름을 한눈에 추적하기가 어렵다. 표준식별체계가 도입되면, 작품 하나하나가 고유한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되고, 이 번호를 기반으로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언어로, 어떤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는지, 어떤 매출이 발생했는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정산의 투명성과 연결되고, 창작자와 제작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IP가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분쟁 예방과 공정한 계약 문화 정착이다. 지금까지는 작품의 판권 범위, 서비스 영역, 2차·3차 활용 범위를 두고 해석의 여지가 생기거나 정보가 불완전해서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표준식별체계가 정착되면, 계약서에도 “어떤 코드로 정의된 IP를 어느 영역에서, 어떤 형식으로 이용한다”는 식으로 명확히 표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지나치게 복잡한 문장보다 오히려 훨씬 직관적이고, 추후에 계약 범위를 확인하거나 수정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업계 전반에 보다 건강한 신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크다. 지금까지 웹툰 산업에 대한 통계는 플랫폼·기관별로 조각조각 나누어진 데이터를 추정·합산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표준식별체계가 도입되면 작품 단위의 유통·매출·이용 데이터를 보다 일관된 기준으로 수집·분석할 수 있다. 어떤 장르와 포맷이 성장하고 있는지, 해외 어느 지역에서 어떤 유형의 K-웹툰이 반응을 얻고 있는지, 또 창작자들의 수익 구조가 어느 부분에서 취약한지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 웹툰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강력하게 보완하는 중요한 의미로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향후 정부의 지원정책, 세제·금융·수출 지원 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웹툰이 출판물이 아닌 디지털 콘텐츠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조세나 문화정책 측면에서 보다 합리적인 대우를 받기 위한 논의가 되고 인정이 된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표준식별체계는 “K-웹툰의 기억을 지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가 플랫폼이나 서비스 정책 변화에 따라 사라지거나, 나중에 다시 찾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표준 번호와 메타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정비되면, 훗날 국립중앙도서관이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같은 기관에서 한국 웹툰의 역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웹툰이 단지 소비용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한국 문화의 중요한 유산으로 기록되고 연구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인 “글로벌 경쟁력”과의 연결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웹툰표준식별체계는 국내에서만 쓰는 장치가 아니라, 결국에는 국제 유통 규칙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웹툰 종주국이라면, 당연히 이 표준을 가장 먼저 설계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제안할 책임과 기회가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마다 고유의 코드와 정교한 메타데이터가 부여되고, 이 정보가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다국어로 정리되어 있다면, 해외 바이어와 플랫폼 입장에서는 K-웹툰을 검토하고 편성·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쉬워진다. 어떤 작품이 어느 연령대에 맞는지, 어느 나라에서 이미 연재되었는지, 영상화·게임화·머천다이징 권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을 표준화된 데이터로 한 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체계는 AI 번역·추천 시스템과도 자연스럽게 연동될 수 있다. 표준화된 작품 정보와 식별자가 있어야, 글로벌 플랫폼의 알고리즘 안에서도 K-웹툰이 제대로 인식되고, 유사 작품 추천, 국가별 큐레이션 등에 효율적으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이 없는 콘텐츠는 검색되기 어렵고, 정렬되기 어렵고, 추천되기 어렵다. 반대로 말하면, 표준식별체계는 K-웹툰이 글로벌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찾기 쉽고, 쓰기 쉽고, 투자하기 쉬운 콘텐츠’로 자리 잡게 만드는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웹툰표준식별체계는 당장 내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향후 5년, 10년을 바라보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야 하는 장기 전략에 가깝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념과 방향에 대한 합의, 기본 설계, 유관 기관과의 공감대 형성 등은 이미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 체계가 본격 도입되면, K-웹툰은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구조를 바탕으로, 종주국다운 규칙과 기준을 세계에 제시하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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